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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과 목포의 눈물

남도 기행(@사진: 유달산 대학루)

by 꿈꾸는 시시포스


말랭이마을을 둘러보는 일정을 끝으로 전주를 뒤로하고 목포를 향해 차를 달렸다. 어제오늘 군산에 이어 전주의 핫스폿 몇몇 곳을 둘러본 것으로 호남의 진면목을 보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갑자를 살면서도 연이 닿아 방문했던 호남 지역 도시는 군산, 광주, 여수, 보성 등 몇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오래 머문 것도 아니라 기껏해야 하루 정도 묵는 짧은 일정이었다. 지난해 친구들과 2박 3일 일정의 남도 명산 산행은 강진 장흥 해남을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오후 세 시경 유달산 노적봉 아래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를 세웠다. 서해로 흘러드는 영산강 하구, 다도해, 목포 시가지 등 사방을 굽어보며 유달산이 우뚝 자리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쌓아 놓은 것처럼 왜군을 속였다는 노적봉, 그 맞은편 계단을 따라 유달산 산정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노적봉/ 목포 개항 110주년 기념비/포대의 천자총통)

그 초입에서 한자로 '유달산 정기(儒達山精氣)'라고 쓰인 목포 개항 110주년 기념비와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가 목포에 온 것을 반기듯 맞이한다. 이어서 충무공 이순신 동상, 오포대, 대학루(待鶴樓),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 달선각(達仙閣) 등이 잘 정비된 돌계단을 따라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대학루(待鶴樓)에 올라서면 삼학도를 비롯해서 영산강 하구와 바다의 여러 섬이 눈에 들어온다. 그 이름에는 한 젊은이를 사모하던 세 처녀가 세 마리 학으로 환생했다는 삼학도(三鶴島)에 얽힌 전설 속의 학이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목포 사람들의 애틋함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목포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자리한 <목포의 눈물> 노래비 옆으로 다가서자, 목포가 낳은 불세출의 가수 이난영의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그녀의 목소리는 덤덤한 듯 애절하다.

무성한 동백이 떨구어 놓은 동백꽃은 탐방객들 발길에 즈려 밟혀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처럼 산정으로 향하는 돌계단 길을 붉게 물들여놓았다. 달선각이 내어 놓는 조망은 한층 더 넓고 아득해서 그 위에 올라서서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달아오른 몸을 식히니, 그 이름처럼 마치 신선들이 사는 경계로 들어선 듯하다.

<목포의 눈물> 노래비/목포의 가수 이난영/유달산 동백

마당바위 직전의 포대에 천자총통 한 기가 바다를 굽어보며 자리한다. 그 우측으로 휘돌면 급전직하 가파른 계단이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로 인도한다. 사다리처럼 가파른 계단길은 유달산 동편의 목포 시가지를 눈 아래 펼쳐 놓는다. 머리 위로는 케이블에 매달려 유달산 북쪽의 북항승강장에서 유달산을 거쳐 고하도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가 연신 오간다.


가파른 돌계단 끝 홀연 해발 228미터 유달산 정상 일등바위가 나타났다. 하늘에 닿을 듯 곧추 선 암봉은 거칠 것 하나 없이 사방으로 툭 트인 조망을 펼친다. 유달산은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의 시작점이자 종착지로, 옛날부터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유달산을 거쳐간다는 전설이 전한다고 한다.

유달산 정상 일등바위/케이블카에서 조망한 낙조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의 김암기 作 <어판장>과 나지수 作 <순환>, 목포근대역사관(右)


산 아래 가장자리에서 산정까지 반듯한 돌계단을 축조한 태산(泰山) 등 여느 중국의 명산처럼, 유달산은 곳곳에 가진 정성을 쏟아 넣은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여러 누각과 봉수대, 이순신 장군의 전설이 서린 노적봉, <목포의 눈물> 노래비, 달성사 보관사 등 사찰, 조각공원 등 많은 유적과 문화 공간을 품은 유달산, 목포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한 번만 찾아와 본다면, 그 누군들 그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호남의 도시 유람 중, 이곳 목포에서 기대치 않게 유달산의 정상까지 발을 디디는 행운을 누리게 될 줄이야. 짧았지만 인상적인 등산에 이어, 거쳐 온 지점들을 찬찬히 되짚어가며 원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해상케이블카에 오르면, 그 품에 안겨 걷던 유달산의 온전한 모습을 공중에서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마침 서녘으로 기운 태양이 다도해 위에 드리운 낙조가 감흥을 더한다. 그 미려한 장관을 말로써 표현할 재주가 부족함을 실토하며, 직접 와서 보시라고 권할 밖에.. 25-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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