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막천을 따라 여우고개로 페달을 밟다
여름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듯 정오쯤이 되자 기온이 30도에 육박한다.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가 햇살 속으로 몸을 던져보고 싶었다. 탄천으로 접어드니 계절은 이미 여름이다.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가끔 보일 뿐, 풀밭과 산책로에는 까치들만 제 세상인 듯 분주히 먹이를 뒤진다.
서현동을 지나 정자동, 구미동을 통과해 동막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막천의 자전거길은 탄천만큼 정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몇 차례 인도와 차도를 번갈아 오르내려야 했다. 운재산 자락을 넘어 고기리 낙생저수지를 스쳐 지나오니, 길가에는 접시꽃이 곱게 피어 자태를 뽐내고, 전깃줄 위에는 어치들이 나란히 앉아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기 2교에서 동막천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물길을 따라 북쪽, 발화산리천과 합류하는 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오늘 라이딩 루트는 여우고개를 넘어 판교 운중동으로 내려서는 것이다.
응달산과 광교산 줄기 사이를 흐르는 동막천을 따라 고기 3리의 한적한 도로로 들어서니, 소란스러운 세상과 조금 멀어진 느낌이다. 밭두렁과 산기슭에 서 있는 밤나무 고목들은 더운 기운 속에서도 짙푸른 잎 사이로 콩비지 빛 가늘고 긴 수술을 무수히 내밀어 계절의 숨결을 내뿜고 있다.
여우고개로 난 석운로가 경사를 높여가기 전, 우담산 자락에 문충공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의 묘가 있다. 문장과 글재주가 뛰어나 중요한 외교문서 작성을 맡기도 했던 그는, 병자호란 때 삼전도비(三田渡碑)의 비문을 짓는 얄궂은 역할을 맡게 된다.
삼전도비의 정확한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로 인조가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로 항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청 태종이 세우게 한 것이다. 만주어, 몽골어, 한문, 조선 한글로 각각 새겨진 비석에는 청 태종이 조선을 정벌한 까닭, 청 태종의 조선에 대한 은혜로운 대우, 조선의 충성 맹세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경석의 묘역을 둘러보며, 패전과 치욕의 역사와 적국 군주의 은덕의 글을 지으며 그는 얼마나 무겁게 붓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뚫린 터널에 길의 주도권을 내어준 석운로에는 지나는 차량이 드문드문하고 주변에는 인기척도 없어 고즈넉하다. 자전거를 끌고 비탈길을 오르다 보니, 우담산과 응달산이 천천히 낮아지며 맞닿는 여우고개가 보였다.
여우고개 고갯마루에 올라서 안장에 몸을 싣자, 두 바퀴는 기다렸다는 듯 내리막길을 향해 질주한다. 땀으로 젖은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이게 자전거를 타는 맛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고갯마루를 내려서는 길에도 이런 바람이 안겨들면 좋겠다.
판교 운중동으로 내려서 운중천변 자전거길을 따라 하류로 페달을 밟았다. 천변을 걷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고, 맨발로 냇물 속을 까치발 걷듯 조심조심 걷는 여학생들도 눈에 띈다. 온갖 초목으로 무성한 천변 습지와 방천은 여전히 들꽃이 흐드러지게 수놓고 있다.
화랑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며, 다시 탄천 자전거길로 접어들었다. 천변을 따라 페달을 밟다 보니 어느새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저마다의 속도로 흘러가는 사람들과 물길, 그리고 계절의 숨결을 느끼며 달린 시간이었다. 오늘은 문득 역사의 한 페이지도 마음속에 되짚어 보게 된, 그래서 더 의미있고 즐거운 라이딩이었다. 25-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