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교 아래 자전거길에서 바라본 경안천
오산천이 경안천으로 안겨드는 모현교회 부근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내렸다. 11시 무렵, 오산천의 종점에서 발원지를 향해 상류로 거슬러 가며 라이딩을 시작했다.
페달을 밟아 천천히 나아가는 자전거길 옆 방천은 온통 초록빛 풀숲으로 덮여 있다. 백로는 고요히 물속을 바라보고, 보 위에 앉은 해오라기 한 마리는 날개를 반쯤 펴서 햇살을 즐기고 있다. 그 곁에서 오리들은 물질에 여념이 없다. 좌측 멀리 정관산, 우측으로 문형산의 여러 갈래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매산교를 건너 들어선 매산리 천변 텃밭에서 긴 줄기 끝에 붉은 꽃을 피운 접시꽃과 보석 같이 고운 빛깔의 호박꽃이 인사한다. 그 곁에는 애기 주먹만 한 열매를 맺은 호두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평소라면 사람과 차량으로 분주했을 휴일의 거리는 고요하고, 새소리와 오산천 물소리가 그 정적을 채웠다.
담장 옆 탐스런 백합꽃 아래에 앉아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낯선 불청객이 귀찮다는 듯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향수산 북쪽 긴 산줄기 끝에서 오포천변 자전거길이 끊기고, 하천 반대편으로 건너갈 다리도 없다. 페달을 밟아 얕은 물을 호기롭게 건너려다 한쪽 발만 물에 빠트리고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다시 매산교로 되돌아 차도를 따라 우회해 오포천변으로 닿았다.
용인에서 광주로 경계가 바뀌는 지점, 경계라는 것은 늘 그렇듯 관심과 배려가 소홀하다. 이처럼 자전거길이 뚝 끊긴 것도 결국은 님비(NIMBY)식 행정의 그림자 아닐까. 맞은편 천변도로도 어느 창고 앞에서 멈췄다. 대한로프구조협회 창고 앞에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기둥과 그 위 여인 조각 모형이 한동안 시선을 붙잡았다.
참바대교를 지나자 오산천이 다시 천변도로를 내어준다. 빌라촌 사이 텃밭에는 가지가 한창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고, 고추밭도 고운 빛을 더해갔다. 방천에 늘어선 어린 해바라기들이 노란 얼굴로 환하게 인사를 건넨다.
고구마밭 너머로 문형산 동쪽 기슭 묘원이 아득히 보이고, 그 너머 오산천 건너편엔 삼각형 봉우리를 곧추 세운 문수산이 늠름히 서 있었다.
문형 3통 마을에서 천변도로가 다시 끊겼다가 동림 2교 인도교에서 이어졌다. 주택가와 거리를 두고 물류창고와 집화소들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다. 시안공원묘원 입구에는 망자의 놀이터를 지킬 석등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가로등 기둥에는 명성황후 뮤지컬 홍보 플래카드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등잔박물관, 김자수묘를 알리는 익숙한 표지판과 함께 포은 묘역 표지판도 눈에 들어온다. 포은교를 건너 문수산 자락에 자리한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역으로 방향을 돌렸다. 포은의 묘역은 오산천 쪽을 바라보며 아늑히 자리해 있었다.
앞쪽 멀리 완만히 내려앉는 불곡산 줄기가 아늑하게 감싸 안은 형국이다.
연안 이 씨 묘역에 포은의 증손녀가 시집온 인연으로 이곳에 포은의 묘소가 함께 자리했다니, 생과 사를 넘어 이어진 핏줄과 인연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비석 군을 지나 너른 잔디 마당을 건너니 포은 동상이 나를 맞았다. 동상 옆에 새겨진 그의 단심가와 그의 어머니가 지은 백로가를 한 번 읊조리니,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진다. 묘소로 오르는 길, 늠름한 노송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고 잔디는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다.
포은의 묘역을 뒤로하고, 그 부근에 자리한 토루처럼 생긴 등잔박물관의 외관을 한 번 둘러본 후, 능원리 마을 오산천 나무데크 위로 다시 페달을 밟았다. 하천 건너 푸른 능선과 구름이 어울린 하늘을 등지고 우뚝 솟아 있는 콘크리트 생산 설비가 생경하다.
어느덧 다시 광주에서 용인 모현읍 오산리로 바뀌는 경계를 넘는다. 지도 앱은 오산천 발원지까지 4km 남짓, 20~30분 거리라 했지만, 내 더딘 페달로는 그보다 더 걸리지 싶었다.
이 마을도 여느 하천 발원지 부근처럼 카페, 전원주택, 갓 지은 빌라 등이 뒤섞여 있었다.
십자가 첨탑이 구름 속에 걸린 화평교회 고갯길을 넘자, 교회 뒤로 천변 마을 골목길이 이어졌다. 그 골목길은 이내 끝났고, 오산천은 마치 푸른 소를 타고 함곡관(函谷關)을 지나 서쪽으로 사라진 노자처럼, 뒷모습을 보이며 홀연 초목이 무성한 법화산 골짜기 속으로 사라졌다.
온몸에 땀이 흥건히 배였지만, 출발점에서 약 20km 달려 오늘 여정의 반환점에 닿았다는 성취감이 마음을 가볍게 했다.
내리막길은 페달조차 필요 없는 내리막길이다. 천변도로를 잠시 벗어나 모현 오산리에서 조선 중기 영의정 오윤겸의 묘역에 들렀다. 묘역 아래 연못을 둔 법화산 자락 해주 오 씨 묘역은 고즈넉하고 독특해 보였다.
오산천 하류로 되짚어 내려가는 길은 한결 수월하다. 능원교 옆 능소화가 햇볕에 지친 듯 고개를 떨군 모습이 꼭 라이딩과 강렬한 햇빛에 지친 내 모습 같다. 포은교 다리 아래 자전거를 세우고 벤치에 앉아 솔솔 부는 바람에 땀을 식혔다. 오산천이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지점, 출발점으로 되돌오며 오늘의 라이딩 미션을 클리어한다.
여정을 조금 더 늘려 경안천을 건너 관정천을 따라 올라갔다. 관정천은 정광산과 용마산 사이에서 시작해서 한국외대 캠퍼스를 지나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짧은 하천이다.
방학을 맞은 캠퍼스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을 만큼 인적 없이 적막하기만 하다. 한때 학생들을 태우고 분주히 오갔을 광역버스들은 너른 공터에 멈춰 선 채 긴 휴면에 들어있다. 여기저기 '진리 평화 창조'라는 창학이념이 쓰인 플래카드만 여기저기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학문과 이상을 좇아 밤낮없이 붐벼야 할 상아탑이 썰물 빠진 갯벌처럼 허전하여 괜히 안쓰럽다.
산기슭으로 가파르게 뻗은 교내 도로를 따라 인문경상대 건물까지 올라갔다가, 되돌아서 안장에 몸을 얹고 바람을 가르며 교정을 빠져나왔다.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왕산교 밑 벤치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땀과 피로를 떨쳐냈다. 라이더들이 간간이 내 앞을 스쳐가고, 소나기 지나간 뒤처럼 하늘엔 뭉게구름 솜사탕처럼 피어올랐다.
번다한 속세를 떠나 자연(自然)에 귀의코자 출관(出關)한 노자, 일개 범부(凡夫)로서는 그 초탈(超脫)을 흉내내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만 고백하게 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