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의 2025년 전승절(抗战胜利纪念日) 행사에 우리나라 대통령이나 외교장관의 참석 여부를 둘러싼 정치권의 관심과 논란의 조짐이 있다.
이 이슈는 단순한 의전 차원을 넘어, 역사 인식, 외교 전략, 그리고 지정학적 포지셔닝이라는 세 축이 복합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한 현상이다.
이 행사가 단순히 역사 해석의 연장선이 아닌, 국제정치와 외교적 차원의 전략적 유연성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유럽 여러 국가는 1945년 5월 8일 나치 독일이 항복한 날을 전승절로 기념하는데, 이를 계기로 ‘자기반성과 공동체 의식’의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유럽 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절을 기념하는 방식에서 자국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절제된 방식으로 해석하며, 전후 유럽통합이라는 대의에 방점을 찍는다.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5월 8일과 9일을 기념하되, 국가주의적 과잉을 피하며 공동 추모 행사, 유대인 희생자 기림 등으로 구성해 전범국·피해국의 경계를 넘어선 유럽적 연대를 강조한다.
러시아는 5월 9일을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와 애국주의로 채운다. 하지만 유럽의 주요국은 이에 참여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부분의 서방국은 러시아의 전승절 기념을 ‘자국의 과거 미화’로 간주하고 외교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
중국의 전승절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승전이라는 명분 아래 항일전쟁의 중심을 중화민족의 서사로 재구성하며, 외교·내치 양면에서 국력을 과시하는 이벤트로 변모하고 있다. 2015년에는 시진핑 주석이 대규모 열병식을 주재하며 이를 국제 정치 무대로 끌어올렸다. 당시 우리나라의 박근혜 대통령이 이 행사에 참석하여 미묘한 파장을 던지기도 했다.
최근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된 국면에서 우리 국가 원수나 외교장관 등 정부대표가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경우, 미국과의 공조에 균열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동북아 지역 안보구조 속에서 한국이 자율적 외교 공간을 모색하는 일환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한국 외교장관이 전승절에 참석한다면 이는 중국과의 고위급 외교 복원이라는 실질적 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동시에 한미일 안보협력 구도에 잠재적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전승절이라는 역사적 이벤트의 성격상, ‘누구와 함께 추모하느냐’는 외교적 메시지가 강력하게 전달된다.
과거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은 일시적 ‘균형외교’ 시도로 해석됐지만, 결과적으로 한미 간 신뢰에 일정한 부담으로 작용한 선례가 있다.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대한 태도는 단순한 참석·불참의 이분법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한국이 무엇을 기념하고, 어떤 메시지를 세계에 발신하길 원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바탕으로 조율되어야 한다.
참석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의 선제적 설계이다. 예컨대, 항일 전쟁과 한국 독립운동의 연계를 강조하거나, 제국주의 반대를 공동 가치로 삼는 등의 외교 담론이 필요하다. 유럽처럼 공동의 과거를 조용히 기리고, 미래를 위한 교훈으로 삼는 접근이 지금 한국 외교에도 요구된다.
지금의 논란은 한국이 처한 한미일 안보 협력이라는 ‘동맹 기반의 외교’와 한중관계 정상화를 위한 ‘전략적 자율성’ 간의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험대이다.
어떤 면에서 ‘역사 외교’는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직시하고 미래의 방향을 찾는다는 그 의미로 인해, 현실 국제정치의 구속으로부터 일정 부분 자유로울 수 있는 구실을 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전승절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외교적 해석을 통해 새롭게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특히 세계사는 단절보다 교류와 조율을 통해 새로운 장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