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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만동에서 역학자?와 조우하다

by 꿈꾸는 시시포스

장마가 물러난 그날 오후, 수원의 길거리에는 쨍쨍한 햇빛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바람이라고는 뜨겁게 달아오른 도로 위에서 일렁이는 아지랑이뿐이었다.

나는 건널목 앞에서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자동차의 엔진음이 뒤섞여, 귀에는 잔물결 같은 소음이 가득했다.

그 순간, 옆을 스쳐 지나가던 한 젊은 여성이 발걸음을 천천히 늦추며 나를 찬찬히 훑어보는 눈길을 느꼈다.

“덕이 많으시네요… 인덕은 많은데 가까이 도와줄 분이 없어요.” 지나가는 혼잣말처럼 들렸지만, 목소리는 뿌리를 가진 나무처럼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뭐라고요?" 라며 되묻는 말에, 그녀는 스스로를 ‘역학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 소개하며, 수원의 선방에서 수행 중이라 했다.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역학’이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궁금증이 고개를 들었다. 약속까지는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고, 마침 신호등 옆 건물 1층, 너른 유리창의 커피숍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차 한 잔을 제안했고,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숍 문을 열자, 원두 볶는 향이 묵직하게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잔잔한 음악이 흘렀고, 사람들은 햇빛이 드는 창가 쪽 테이블은 피해 쌍쌍이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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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차를 각각 한 잔씩 주문하고 자리를 잡자, 그녀는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숄더백에서 백지 한 장과 펜을 꺼내 놓고, 마치 내 사주를 풀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

“당신은 천덕과 인덕이 많아요. 하지만 그 복이 지금 흐르지 않고, 끊긴 상태예요.

일복은 많지만,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돌아오지 않죠.

집안의 선하게 돌아가신 조상들 덕에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셨을 겁니다.

하지만 원한을 품고 떠나 중천을 떠도는 조상도 있어, 그 기운이 지금 당신을 붙잡고 있어요.

그래서 좋은 인연과 기회가 와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흩어지는 거죠. 꽃에 똥이 묻어 있어, 벌·나비 대신 파리만 날아드는 격이랄까요.”

그녀는 내 인생의 결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말을 이어갔다. 집안의 기운, 조상의 영향, 보이지 않는 운의 흐름… 어딘지 맞아떨어지는 듯한 그녀의 말은 흥미롭기도 하고 묘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 모든 걸 풀려면, 조상을 먼저 도와야 해요. 업장을 풀어야 하죠. ‘장 지짐’이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종이에 적어 말아 태우고, 그 정성을 남기는 거죠. 수원에서도 할 수 있지만, 원래 본 도장은 삼척과 괴산에 있어요. 미래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조상을 편히 보내드리고 기운을 정리해야 해요. 그래야 본인 일도 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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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경계심이 고개를 들었다. 삶의 해답이 정말 그런 의식 속에 있을까? 아니면 불안과 호기심을 파고드는 그녀의 말에 또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걸까.

간간이 시계를 보며 한 모금씩 마시던 내 커피잔은 바닥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예측되는 뻔한 결론에 내 인내심도 잔 속의 커피처럼 소진되고 있었다.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녀의 말차 잔은 진지하게 말을 이어가느라 온기만 식은 채 그대로였다.

어느새 호기심은 시들해졌다. 그 대신에 역학이니 도(道)니 하는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를 여는 문을 등지고 왜 늘 과거의 그림자에서 미래의 길을 찾으려는 걸까, 하는 궁금증만 하나 더 보탠 느낌이다.

문을 밀치고 거리로 나서자, 여름의 열기가 온몸으로 훅하며 비집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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