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주유기(周遊記)

3박 4일 가족여행

by 꿈꾸는 시시포스

해외로의 첫 가족여행을 기획했다. 목적지는 일본 오사카였다. 일주일 전에 오사카 가족여행을 결정한 후, 당일에 항공권과 호텔 예약을 하고, 여행지에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교토 일일여행, 주유패스 구입, e-심 카드 구입, 온라인 체크인과 탑승권 발급, Visit Japan에 CIQ 요구정보 입력 등 준비를 마쳤다. 준비 과정에서 서로 의견이 달라 부딪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개략적인 3박 4일 일정을 확정했다.

여행 출발을 앞두고 설렘과 함께 기대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딸은 백일이 갓 지난 때 북경에서 한국으로 입국할 때와 세 살 때 제주도 왕복 편 탑승 이후, 세 번째의 비행이자 성인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비행을 경험하는 셈이다. 평소 내비치던 비행기는 타지 않겠다던 고집을 스스로 거두어들인 것이 의아하고 대견하다. 고교생활 내내 코로나 팬데믹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재수 끝에 대학입시의 문을 통과하는 등, 나름 내적 고통과 함께 성장의 진통도 견디어 낸 터였다.

인천공항 국제선청사의 출국수속에 장시간이 소요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후부터 잠재되었던 해외여행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탓일 것이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 이륙한 우리 비행기는 한 시간 남짓 짧은 비행 끝에 간사이공항에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이처럼 근거리에 위치한 점이 오사카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 중 하나인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역 통과, 입국자 지문 및 안면 등록, 출입국관리국 입국심사, 세관 구역에서 재차 여권과 미리 입력해 둔 비짓재팬(Visit Japan) QR코드 스캔 등 CIQ 절차를 거쳐 입국장으로 나섰다. 우리나라에 비해 입국 절차가 다소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미널 2층 지하철 탑승지역에서 IC카드를 구입하여 오사카의 중심부인 난바(難波)로 가는 난카이선(南海線) 전철에 탑승했다. 간사이공항에서 난바까지는 난카이 라피트(Rapit), JR 하루카 등 다른 전철 노선도 있지만, 난카이 공항선은 요금이 약 970엔으로 다른 노선보다 저렴하다.

이 전철은 대부분 구간이 지상으로 달려서 차창으로 바깥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고층의 콘크리트 아파트가 즐비한 우리와는 달리, 낮은 목조 주택이 펼쳐진 창밖 풍경이 생경하기도 하고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린쿠타운, 이즈미사노, 가이주카, 기시와다, 하루키(春木), 이즈미오츠(泉大津), 하코로모(羽衣), 사카이시(堺市), 덴가차야(天下茶屋), 신이마야를 거쳐 사십여 분만에 오사카의 중심부 난바(難波) 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트렁크를 하나씩 끌고 역사에서 지척에 위치한 '규카츠 토미카(牛かつ 冨田) 식당으로 이동했다. 좌석이 열여덟 개라는 그 식당은 입구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장난이 아니게 길게 늘어져 있다. 이층의 식당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들어서기까지만 삼십여 분이 걸렸다. 이층 식당 문전까지 오르는 좁고 가파른 그 계단은 보물을 숨겨둔 다락방으로 통하는 사다리처럼 느껴졌다. 대략 한 시간 만에 천장이 낮은 이층 식당의 맨 안쪽 자리로 안내받아 앉았다. 선술집처럼 주방이 노출된 식당 주방에서 음식 준비하는 셰프들의 손놀림이 분주하고, 삼삼오오 올망졸망 놓인 식탁에 손님들이 빈자리 없이 둘러앉아서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들고 있다. 채널 J에서 방영되는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던 일본의 어느 식당에 들어와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주문한 대로 고체연료 화독 위에 손바닥 크기의 개인용 구이 판 네 개가 올려진 탁자 위에 먹기 좋게 썬 반쯤 익힌 우육 한 조각, 게딱지만 한 접시에 얇게 쓴 단무지 두어 조각, 미소된장 한 종지, 보리알이 몇 개 섞인 보리밥이 놓인 쟁반이 각자의 앞에 하나씩 놓였다. 일본다운 식문화의 일면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한 시간여 기다린 시간이 아깝기는 했어도 일본을 조금 더 알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

호텔에 체크인한 후에 추위로 몸이 무거운 딸을 호텔에 두고, 셋이 호텔을 나서서 난바 역 부근 유니클로 매장으로 가서 딸을 위해 외투를 샀다. 집을 나설 때 롱 패딩을 벗어 두고 온 것을 탓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호텔 부근 식당에서 생선구이와 가지볶음 반찬에 밥 세트 등을 주문하여, 맥주 500ml을 반주 삼아 저녁으로 들었다.

아내와 아들은 호텔로 돌아가고, 나는 오사카 최고의 번화가이자 여행자 필수 방문지 가운데 하나인 도톤보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텔 부근 세븐일레븐에서 치킨 두 조각, 도넛 한 개, 콜라 한 병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와서 함께 나눠 먹고 자정이 가까워질 시각에 여행 첫날을 마감했다. 창쪽으로 이층 침대 두 개가 놓인 콤팩트한 넓이의 4인실 호텔 방에서 가족이 나란히 함께 하는 것도 전에 없던 특별한 경험이다. 달콤한 꿈나라로 갈 시간이다.

여행 셋째 날, 이튿날 교토 일일투어로 피곤했던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아들과 딸을 호텔에 남겨두고, 아내와 함께 오사카 일일투어를 해보기로 했다. 첫 일본 자유여행이고 주유패스도 처음 사용해 보는 터라 살짝 긴장했지만, 설명서 보며 그대로 따라가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맨 처음 향한 곳은 우메다 스카이빌딩의 공중정원 전망대였다. 다이코쿠초 역에서 미도스지 선을 타고 우메다 역으로 이동했다. 건물 두 개가 다리로 연결된 독특한 구조의 이 빌딩은 35층에서 공중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지상 173미터에 위치한 공중정원 전망대에서는 오사카 시내가 한눈에 펼쳐졌고, 뭉게구름이 떠있는 맑은 하늘과 아침 햇살 아래 반짝이는 도시 풍경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정오 무렵, 우메다에서 JR 오사카 역으로 이동해 순환선을 갈아타고 오사카조코엔 역에 도착했다. 역을 나서자 멀리서도 웅장하게 솟은 오사카 성이 눈에 들어왔다. 해자 위에 놓인 극락교를 건너며, 단단한 돌담과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서서히 드러나는 성의 자태는 위엄 그 자체였다.

오사카 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통일의 야망을 담아 16세기말에 축조한 성으로, 일본 역사에서 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후 전란과 화재로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거듭했지만, 지금도 오사카의 정신적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성 안으로 들어가 층층이 전시 공간을 오르며 히데요시의 일대기, 전쟁의 기록, 무사들의 갑옷과 무기를 살펴보니 단순한 건축물 이상의 무게가 느껴졌다. 일본 전국을 통일하고 더 나아가 대륙을 삼키겠다는 야심으로 조선을 침공해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우리에게는 철천지원수임에도, 일본인들에게는 여전히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점이 의아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가 세운 정권도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무너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니, 권력의 흥망성쇠가 얼마나 덧없고 무상한 것인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맨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자 오사카 시내가 시원하게 펼쳐졌고, 성을 둘러싼 해자와 공원은 과거의 부침은 잊은 채 고즈넉한 평화로움을 전해주었다.

이후 순환선을 타고 이동한 곳은 츠텐가쿠(通天閣)였다. ‘하늘에 닿는 탑’이라는 뜻을 가진 이 건축물은 1912년 파리 에펠탑과 뉴욕 아케디언 빌딩을 모델로 세워진, 당시 근대 일본의 상징이었다. 전쟁 중 소실되었다가 1956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는데, 오사카 시민들에게는 단순한 전망대가 아니라 애환과 추억이 담긴 생활의 아이콘이다. 전망대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니, 현대적 고층 빌딩 사이사이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오사카의 옛 정취가 겹겹이 보였다.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가족과 함께 근처 마트에서 식료품을 쇼핑했다. 그리고 아이가 손꼽아 기다리던 피카추 몰에 들렀다. 딸아이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매대를 둘러보다가 결국 노란빛이 귀여운 피카추 인형 두 개를 품에 안았다. 오사카의 역사적 깊이와 현대적인 활력이, 그리고 작은 일상의 기쁨이 어우러진 하루였다.

크리스마스이자 여행의 마지막 날, 아내와 함께 호텔 주변 공원과 신사를 가벼운 산책 삼아 둘러보았다. 난바 야사카 신사(八阪神社)는 오사카 시 나니와 구(浪速区)에 있는 신사로 액막이 역병퇴치 인연 순산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업 향상, 취업 내정 및 시험 합격 등을 기원하는 참배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세모를 앞두고 지난해 감사할 일들과 새로운 해의 소원을 기원하며 첫 해외 가족여행을 마음속으로 조용해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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