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수도, 리야드에서의 나흘

by 꿈꾸는 시시포스

십 년 전 오월 초, 이스탄불을 거쳐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킹 칼리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피부를 파고드는 건 강렬한 태양과 건조한 공기였다. 출장이라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낯선 땅이 선사할 풍경과 경험에 대한 호기심은 묘한 설렘을 주었다.

사우디로 출국하기 일주일 전쯤, 서울역에서 N 국장과 J 계장을 차로 픽업하여, 종로구 하나투어 빌딩 내 비자 인터뷰센터로 향했다. ‘사막의 나라’로 사우디의 심장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현장 인터뷰 등 꽤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사진과 지문을 남기는 과정이 길게 이어졌다. 절차의 까다로움도 문제였지만, 비용 또한 적지 않았다. 비자 발급 수수료만 67천 원, 여기에 택배 배송료까지 합치니 8만 원에 가까운 돈이 들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서는 우리나라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나라의 수가 145개국에 달해 세계 3위권에 올랐다고 했다. 미국, 영국에 이어 프랑스, 독일과 같은 순위라는 소식은 자부심을 느끼게 했지만, 정작 사우디는 그 범주에 들지 않았다. 현재는 그 수가 192개국으로 늘어났으니 명실상부 비자 강국인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반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9배에 달하며, 석유 매장량은 세계 2위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국가로서의 출발은 1932년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1875-1953)가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선포하면서 시작되었다. ‘사우드 가문’의 이름을 딴 국가라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전통적인 이슬람 율법 체계가 사회 전반을 규율하면서도, 석유 산업을 기반으로 한 근대화와 도시화가 병행되는 모순적이고도 역동적인 나라다. 수도 리야드는 이 역동성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작은 오아시스 마을에 불과했으나, 오늘날에는 인구 700만 명을 넘어서는 중동 최대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리야드에서의 첫 일정은 작은 해프닝으로 시작됐다. 개회식이 아침 일찍 열린다는 안내를 받아 서둘러 회의장으로 갔지만, 실제 본 행사는 저녁 늦게야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뜻하지 않게 생긴 여유 시간 덕분에 도시 탐방에 나설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마스막 요새(Masmak Fortress)였다. 1865년경 건립된 흙벽 요새로, 1902년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가 이곳을 점령하면서 현대 사우디의 기틀을 세운 역사적 장소다. 오늘날 이곳은 작은 박물관으로 운영되며, 당시 사용된 무기, 복식, 지도 등을 전시해 두고 있다. 두터운 진흙 벽과 웅장한 성문 앞에 서 있으니, 사우디의 격동적인 출발점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모든 생활이 하루 다섯 번의 예배 시간에 맞춰 멈추는 풍경은 이슬람 문화권의 독특한 생활 리듬을 체감하게 했다. 기도 시간이 겹쳐 한참 동안 기다린 후 문을 연 현지 중국 식당에서 점심은 해결했다. 호텔로 돌아와 수영장에서 강렬한 햇살을 피해 물속에 몸을 담갔다. 사막의 도시에서 즐긴 짧은 휴식은 오히려 특별한 선물 같았다. 저녁 무렵 열리는 개회식에서는 미국, 스위스 등 각국 대표들과 인사를 나누며 국제무대 특유의 긴장과 활기를 실감했다.

다음 날, 사우디 청장 등과의 면담 등 리야드라는 낯선 도시에서 짧았지만, 의미 있는 국제 교류의 순간을 마주했다. 점심 무렵, 잠시 비가 흩뿌렸다. 사막의 나라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뜨거운 공기가 잠시 식은 듯했다. 일정을 끝낸 후 리야드의 상징인 킹덤 타워(Kingdom Centre Tower)를 찾았다. 높이 302미터, 99층 규모의 초고층 빌딩으로, ‘열쇠 구멍’ 모양의 독특한 디자인이 도시의 어디서나 눈에 띈다.

전망대에 오르자 끝없이 펼쳐진 모래 위에 세워진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곧게 뻗은 도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건물들은 거대한 신기루 같았다. 타워 내부에는 고급 상점과 식당이 입점해 있었는데, 이는 여전히 전통적 가치관이 강한 사우디 사회 속에서 진행되는 현대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호텔 수영장에서는 또 다른 일상의 풍경이 펼쳐졌다. 물놀이에 열중한 아이들과, 검은색 아바야(Abaya)를 입은 어머니들이 그늘에서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 아이들의 환한 웃음과 여성들의 고요한 대화는 사막의 도시가 지닌 일상의 따뜻함을 전해주었다. 문득 검은 아바야를 걸친 여인들의 모습에서 문득 저 복장이 여성의 본능을 억누르고 신체적 자유를 억압하는 종교의 속박처럼 느껴졌다. 외부인의 눈에는 답답하고 억압적으로 보이는 차림이 그들에겐 이슬람의 정체성과 내면의 자유를 지키는 장치일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 날 일정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 리야드를 뒤로했다. 짧은 출장의 여정이었지만, 리야드는 단순한 사막의 수도가 아니라 역사와 신앙, 전통과 근대가 켜켜이 겹쳐 있는 살아 있는 공간임을 볼 수 있었다. 마스막 요새에서는 이 도시의 과거를, 킹덤 타워에서는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기도 시간이 되면 멈추는 상점, 아바야를 입은 여성들, 한낮의 수영장에서 웃음을 짓는 아이들의 모습은 리야드의 일상과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품은 이 도시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리야드는 ‘아라비안나이트(Arabian Nights, 천일야화)’ 속의 신비한 이야기들처럼 사막 위에 세워진 신비로운 ‘기적의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부족 사회의 중심지에 지나지 않았던 곳이, 오늘날 아랍권 나라들의 맹주로서 세계 에너지 시장을 좌우하는 국가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리야드 방문의 징표로 어느 상점에서 작은 황동제 요술램프 하나를 샀다. 거실 장식장 속의 그 요술램프를 손으로 문지르면, 리야드가 숨겨둔 이야기들을 하나씩 끝없이 들려줄 것만 같다.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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