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검단산에서 용문산 쪽 조망
집을 나서는 길 둥근달이 지지 않고 청계산 위 한 뼘 남짓 높이로 밝게 떠 있다. 기온이 영하 9도 아래로 떨어진 추운 날씨다. 차를 몰아 검단산 주차장으로 향했다. 신년 일출산행 대신 새해 3일째 날 친구들과 첫 산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현충탑으로 오르는 도로변 노상 주차장에는 서너 명의 산객이 출발 채비를 하고 있다. 친구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일출 시간을 한 시간여 남겨 두고 산행을 시작했다. 오랜만의 산행, 친구들과 새해 일출 산행을 내딛는 발걸음이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둠 속 어디선가 수탉이 한 번 길게 홰를 쳤다
어둠에 묻혀 흐릿한 현충탑을 스쳐지나 계곡을 끼고 비탈길을 오른다. 얼어붙었을 계수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얼마간 발길을 따라온다. 능선 위로 지그재그로 휘도는 등로는 서쪽으로 교교한 달빛 아래 고요히 잠들어 있는 하남시의 불빛을 펼쳐 보인다.
문득 올 들어 전국에서 처음으로 주 4.5일제를 실시한다는 하남시의 소식이 떠올랐다. 과연 이 실험이 워라밸의 균형추를 잘 맞추어 더 넉넉한 삶의 여유를 가져다줄까.
가쁜 숨을 따라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서 가슴을 얼려버릴 기세다. 헤드렌턴을 켠 채 산정으로 오르는 산객들이 적지 않고, 산정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몇몇 스쳐 지난다.
새해 첫 주말의 산행, 첫날 일출 산객들로 붐볐을 등로는 그리 많지 않은 적당한 산객들로 호젓하기만 하다.
날씨가 추워서, 날이 흐려서, 뭐가 어째서,... 이런 핑곗거리를 떨쳐낼 결단을 할 수 있다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의 산행에서 이렇듯 쾌감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남짓만에 해발 657미터 검단산 정상에 닿았다. 스무여 명의 산객들이 산정에서 동편을 향해 서서 일출을 고대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태양은 아직 솟지 않았지만 사방은 훤히 밝았고, 동편 하늘 가장자리가 붉은 여명을 머금은 채 새날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 무갑산 양자산 앵자봉 해협산 정암산 등 한강 이남의 산군과 용문산 백운봉 예봉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 등 한강 이북의 여러 산도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안천 건너 정암산 뒤쪽의 백병산 부근 능선 위로 붉은 태양이 천천히 머리를 내밀며 온 천지에 강렬한 빛을 넓게 넓게 펼친다. 새해 들어 세 번째 자전을 시작하는 지구가 맞이하는 일출은 힘차게 전진 도약하며 세 바퀴 반을 회전하고 착지하는 피겨스케이팅의 트리플 악셀처럼 화려하고 우아하다.
태양은 서서히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며 하늘로 치솟았다. 누군가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고, 어떤 이들은 일출을 등지고 기념사진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일상처럼 태양은 매일 떠오르지만, 저렇듯 산정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언제나 특별한 것일 터이다.
한동안 정신이 팔려 일출의 장관에 빠져들었다가 한강과 나란히 서북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그 능선의 중간쯤 팔당 부근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한 정자를 산객 네댓 명이 차지하고 있다. 정자에 올라 안개를 두른 한강과 그 너머 멀리 파도처럼 겹겹 밀려들고 밀려나는 능선의 물결을 한동안 조망했다.
능선이 다하고 내리막 비탈로 접어들며 산정으로 향하는 산객들이 간간이 스쳐 간다. 그중 인사를 건네는 젊은 학생들에게 M은 배낭 속 간식거리를 꺼내 나누어 주고, 나는 주머니 속 온기가 남아 있는 발열패드를 건네주니 반색을 한다.
유길준의 묘역을 스쳐 지나며 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서양 문물을 직접 견문하고 <서유견문>을 남긴 개화기의 선각자. 세상을 향한 열린 시선과 도전의 용기를 떠올리며, 새해에는 조금 더 넓은 시선과 마음으로 세상의 여러 방면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래로는 반듯하게 정비된 나무계단이 이어졌다. 계단 끝자락 즈음에서 검단산 둘레길을 따라 현충탑 쪽 주차장으로 회귀하며 오늘 산행을 마쳤다. 친구들과 근처 식당에 자리를 잡고 순대국밥 한 그릇씩을 들며, 서로 한 해의 안녕을 기원했다. 얼었던 몸과 마음이 뜨거운 국물 한 숟갈에 눈 녹듯 풀어졌다.
병오년 붉은말의 해를 맞이해서 세상은 적토마처럼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하지만, 그렇게 조급해할 일만은 아니지 싶다. 그러면서 공자의 말씀을 음미해 보며, 비록 느리지만 꾸준함만 견지한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음을 마음에 새겨 본다.
"빨리 하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에 매달리지 말아라. 빨리 하려고 하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에 매달리다 보면 큰 일을 이룰 수 없다."無欲速, 無見小利. 欲速, 則不達; 見小利, 則大事不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