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밤의 길이가 제일 길다는 동지(冬至)로 어느덧 겨울도 깊은 골로 접어들고 있다. 모처럼 배낭을 메고 판교역에서 경강선 전철에 올랐다. 오늘의 목적지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열미리와 오향리 사이에 자리한 국수봉이다. 곤지암역 부근으로 달리는 창밖으로 스치는 정광산에 조성된 곤지암리조트 스키장의 눈 덮인 슬로프 등 풍경은 겨울의 결이 완연하다.
경기도 광주시에는 '국수봉(國守峯)'이라 불리는 봉우리가 여섯 개가 있다.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를 구출하고 나라를 보존하고자 했던 간절한 염원과, 광주 일대 쌍령전투에서 패한 원통함이 담겨 있는 이름이다. 여섯 개의 국수봉 가운데 가보지 못한 곳, 앵자봉과 무갑산을 잇는 능선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여러 능선의 중 한 줄기에 자리한 그곳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곤지암역 부근은 새로 조성 중인 신축 아파트 단지가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건너편 정류장에서 들려오는 외국인 청년들의 낯선 말소리를 뒤로 하고, 곤지암역 예계교 정류장에서 300번 버스를 타고 은대미 정류장에서 내렸다. 하열미천 위에 걸린 열미교를 건너며 열미리로 들어서니, 마을 앞산 능선을 따라 백로 떼가 줄지어 날아가는 장관을 선사한다. 왕복 2차선이던 마을 앞 광여로는 왕복 6차선으로 확장되고 있다. 편의점에서 에너지바와 물을 산 뒤, 마을 후미의 들머리로 접어들었다.
곤지암 일대는 완만한 구릉 사이로 천이 감싸 도는 배산임수의 고장이다. 예부터 명당으로 이름난 열미리 역시 본디 ‘열묘(十墓)’라 불리던 곳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기쁘고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의 ‘열미(悅美)’로 이름이 바뀌었다. 제비 꼬리(燕尾; 연미→열미) 형국이라는 마을 뒤편 산자락에 조선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구치관의 묘역이 자리한 것도 같은 연유일 것이다.
죽어서 좋은 땅에 잠들고 싶다는 살아생전의 욕망을 다 채운 때문일까,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열묘(十墓)' 마을 뒷산의 이 무덤들은 아늑해 보인다. 산자락에 산재한 묘역과 그 아래 논밭과 마을은 또렷한 경계가 없어 삶과 죽음의 세계가 서로 엉겨 있는 듯하다.
거북 기단 위에 앞뒤 각각 두 마리 용이 조각된 이수를 인 신도비를 지나자, 왕릉 못지않은 규모의 청백리 구치관의 묘역이 나타나고, 그 뒤쪽으로 등로가 이어진다. 능선마루로 이어지는 등로의 솔과 참나무의 혼효림은 이내 참나무 숲으로 바뀐다. 나뭇잎을 다 떨군 참나무들은 가지를 옆으로 펼칠 공간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듯 가지를 뻗치고 있다.
포수에 쫓겨 달아나던 노루가 뒤로 고개를 돌려볼 만한 능선 언저리로 올라서니, 어느새 땀이 배이며 찬 공기에 움츠렸던 몸이 조금 느슨해졌다. 능선마루 첫 봉우리인 해발 294미터 고사리골산 위로 올라섰다. 고사리골산은 명색은 산이지만 긴 산줄기의 첫 능선마루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쪽 능선과 평행선처럼 길게 마주하고 있는 좌측 능선 사이 골을 따라 길게 누운 열미리 마을이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능선 오른편은 오향리(五香里)로 조선시대 왕실 자기를 제작한 사옹원의 분원관요(分院官窯)가 설치되어 운영되던 광주(廣州)의 주요 도요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낙엽과 얼어붙은 땅이 등산화 밑에서 아삭아삭 소리를 낸다. 성남이천로 광주 5 터널 위를 지나 다리미봉으로 향하는 길에서 내려오던 산객 한 분과 서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이 일대 단골 산객이며 멀리 충청도 등지에서도 이 주변 산을 찾는 산객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지나왔을 국수봉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눈치다.
정상 표지석 대신 정성스레 쌓은 돌탑 세 기가 다리미봉을 지키고 있다. 산은 침묵한 채 제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이정표 글씨는 바래서 알아볼 수 없지만, 나무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산악회 리본이 봉우리 이름과 높이를 알려준다. 송전탑이 서 있는 안부 저 너머에 국수봉이 있을 것이다. 송전선과 바람이 지나는 안부의 나무 벤치에 앉아 보온병의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지도 앱이 국수봉이라 가리키는 지점, 동편으로 산줄기가 갈라지는 능선에 서있는 이정표에 국수봉이라는 희미한 글씨가 보인다. 봉우리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능선이나 다름없는데,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여러 산우회의 리본이 산객의 아쉬운 마음을 애써 위로하려는 듯 쉬지 않고 바람에 흔들린다.
앞쪽에 우뚝 솟아 있는 감투봉으로 치고 올랐다. 감투봉에도 표지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바로 밑으로 광주원주고속도로 터널이 지나는 해발 380미터 감투봉에서는 사방으로 시야가 트이며, 원적산 정개산 무갑산 등 주변의 이름난 산군들이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능선을 타고 넘은 바람이 제법 차고, 감투봉을 내려서는 길은 험했다. 챙모자의 귀덮개를 펴서 쓰고 스틱을 펼쳐 짚으며 된다락산에 올랐다. 이렇듯 밋밋한 능선 곳곳에 이처럼 봉(峰)이나 산(山)이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가 의아하기만 하다.
열미계곡으로 내려가서 건너편 산줄기를 따라 곤지암역 쪽으로 방향을 잡을 요량으로, 능선을 따라 북진하던 발길을 된다락산에서 좌측의 열미계곡 쪽으로 틀었다. 진사(進士)를 지낸 진주 강 공의 묘역을 지나자, 등로가 없는 급전직하 가파른 경사가 기다리고 있다. 앞을 가로막는 잡목 가지를 손으로 헤치며, 고도차 200여 미터 급경사를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인가가 모여 있는 동네에 가까워지자 견공이 낯선 발자국 소리에 컹컹 짖어댄다.
열미리 잠실교회수련원 옆 능선 쪽으로 난 갈림길로 들어서서 맞은편 능선으로 향했다. 가파른 비탈길은 너른 공터에 정체를 날 수 없는 건물 하나를 내어놓고는 툭 끊겨버린다. 앞을 가로막은 축대를 넘어 능선으로 치고 오르는 행세가 산행이 아니라 미지의 땅을 헤치며 나아가는 모험처럼 느껴졌다. 능선마루로 올라서기 전, 꺾여 쓰러진 소나무 옆에 서서 건너편 국수봉 능선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토해냈다.
홀연 나타난 희미한 등로를 따라 능선 위로 향했다. 길이 없어 보이던 젊은 시절의 길었던 방황처럼 산길도 끊겨 없어졌다가 홀연 다시 나타나곤 한다. 그 길은 오솔길처럼 호젓하기도 하고 때론 거칠어져 도전을 자극하기도 한다. '안전제일'이라 적힌 띠지가 능선마루 쪽으로 난 희미한 등로를 따라 나뭇가지에서 흔들리며 길을 안내한다.
초시당산 옆 망루처럼 오뚝 솟아 사방을 조망하는 해발 471미터 봉우리는 이름이 있음 직도 하지만 무명봉이다. 수북이 쌓인 낙엽에 미끄러지듯 무명봉의 가파른 사면을 내려왔다. 등로 주변에 간간이 은빛 고운 자태의 자작나무가 눈에 띈다.
곤지암 읍내 쪽으로 뻗은 능선은 양옆으로 가파른 사면을 끼고 느슨하게 고도를 낮추며 길게 이어진다. 시장기가 목까지 잔뜩 차오를 즈음 이정표와 함께 나란히 놓인 벤치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벤치에 앉아서 곤지암 건너편 백마산과 정광산 곤지암스키장 등을 조망하며 허기를 달랬다. 오토바이커 두 분이 굉음을 내며 신대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윗장고개산을 목전에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신립 장군의 묘역이 있는 오른편 곁능선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도를 낮추어가던 호젓한 산길은 불현듯 큰 봉분의 무덤군 뒤쪽으로 이어졌다.
감투봉 황씨봉산 사태봉산 등 곤지암 뒤편 얕은 봉우리와 능선을 마주 보며 따스히 내려쬐는 겨울 햇볕을 받고 있는 음택이 더없이 아늑해 보인다. 뒤에 이곳으로 이장된 신립과 그 후손들의 묘역이다.
산행을 마치고 곤지암역으로 향했다. 쌍령전투 패배의 치욕을 간직한 국수봉, 탄금대에서 결연히 배수진으로 죽음을 맞이한 용장의 한이 묻힌 땅, 삶 그 너머에서도 평온을 꿈꾼 영혼들의 안식처,... 열미리(悅美里)와 곤지암 일대는 겨울 한기에도 아랑곳없이 이들의 한(恨)과 열망이 엉겨 뜨겁게만 느껴졌다. 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