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 경기 최고봉, 양자산

by 꿈꾸는 시시포스

멀리서 전철로 도착할 친구들을 픽업하러 초월역으로 차를 몰았다. 한남 경기 최고봉인 양자봉과 그 옆에 나란히 선 앵자봉을 잇는 연계 산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조금 이르게 초월역에 도착해서 천변도로를 따라 인근 경인천을 조망해 보았다. 연일 이어진 맹추위로 너른 경안천은 온통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초월역에서 한 달 만에 M과 H를 반갑게 맞아 주어리(走魚里)로 향했다. 마을회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 채비를 하는데,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몸을 비비고는 땅에 드러눕는다. 애교를 부리며 낯선 사람의 손길을 재촉하는 것이 무척이나 애정에 허기진 모습처럼 보인다. 떠돌이인지, 근처에 주인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저런 녀석이라면 반려묘로 함께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바람은 잠잠했으나 냉기는 살을 에듯 매섭다. 두 친구는 양손에 스틱을 하나씩 쥐었지만, 하나만 들고 다니던 내 스틱은 고장이 나 비탈을 오르내릴 때 두 다리에 온전히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느티나무교 인근의 산행 안내도를 확인하고 다리를 건너 등로로 접어들었다. 계곡을 따라 8백여 미터를 오르니 첫 이정표가 나타나 양자산 정상까지 2.8km가 남았음을 알린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너덜 비탈을 따라 천천히 발을 옮겼다.

간간이 까마귀 우는 소리가 철사줄처럼 앙상한 참나무 가지 사이를 가르며 들려온다. 자기 영역에 들어선 낯선 객들에 대한 경고일까. 그 울음은 얼음판을 찍는 스틱 소리처럼 차고 날카롭다.

계곡 왼편 등로를 따라 능선으로 휘돌아 오르자 양자산과 앵자봉의 긴 능선 아래, 포근히 안긴 주어리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정표는 정상까지 남은 거리를 2.4km, 2.2km로 차례로 줄여 알리지만, 정상은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기온은 영하 5도 안팎. 바람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사람은 바람을 피우고, 무는 바람이 들며, 불씨는 바람에 날린다 하듯 겨울 산에서의 바람은 늘 경계의 대상이다.


고도 500미터 즈음, 녹지 않은 눈이 평탄한 능선에 희끗한 얼룩을 남겨 놓았다. 정상을 향해 다시 치솟는 비탈이 이어지고, 안온한 일상에 익숙해진 몸은 그 경사를 버거워한다. 한 시간 남짓 올라 고도 600미터쯤의 능선마루에 닿자, 쉬어가라는 듯 팔각 정자 하나가 나타난다. 정자에 올라앉아 M이 내놓은 바나나를 하나씩 나눠 먹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이어지는 평탄한 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능선을 타고 넘는 바람이 차갑다. 잔설의 얼룩처럼 줄기에 무늬가 선명한 물푸레나무 군락을 지나간다.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정상은 막바지에 이르러 만년설처럼 두껍게 쌓인 낙엽길을 내놓는다. 종아리까지 푹푹 빠지는 등로를 지나자, 이정표 기둥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매달린 표지가 정상까지 200미터임을 알린다.

정상에 오르자 무릎 높이의 소담한 정상 표지석과 너른 전망 데크가 일행을 맞아준다. 앵자봉과 함께 여주시 산북면 주어리를 감싸 안은 양자산(楊子山)은 해발 710미터로, 남한강 이남의 경기도 산 가운데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산 이름은 양평(楊平)에서 남한강 강변을 뒤덮었던 버드나무 숲과 함께 보였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진다(월간 『山』, 2016, 박영래).

양자산 정상에서 조망한 남한강과 대하섬

사방을 둘러보니 양평군과 여주시, 광주시, 이천시 등 사방으로 조망이 툭 트였고, 남한강의 대하섬과 거북섬을 비롯해 용문산, 정개산, 원적산, 무갑산 등 주변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 표지석 옆 돌비석 안내문에는 예전에 이곳에 천문대가 있어 밤이면 별이 쏟아질 듯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고 적혀 있다. 지금도 도심에서 비교적 멀고 빛공해가 적은 환경이니, 비박하며 별을 관측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다른 등로로 올라온 산객 한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산림청·블랙야크·한국의 산하·월간 산이 선정한 100대 명산을 기준으로, 중복을 제외한 총 149개 산을 완등했다고 한다. 이 추운 날씨에 홀로 이 산에 오른 걸 보니, 산행의 매력에 깊이 빠진 사람임이 분명했다. 짧은 만남은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인사로 갈무리하고 정상을 뒤로했다.

주어고개로 내려가는 등로는 가파른 비탈의 연속이다. 두텁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미끄러지듯 내려가기도 하고, 밧줄과 지지목에 몸을 의지하기도 했다. 삭은 밧줄의 부스러기가 장갑에 허옇게 들러붙는다. 은빛 귀티의 자작나무를 비롯해 층층나무, 산초나무, 물푸레, 갈참, 물자작 등 오솔길 옆 몇몇 나무들이 자신이 속한 수종의 이름을 적은 명찰을 허리춤에 달고 있다. 저 나무들도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확실한 사랑의 도장을 찍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누군가의 눈길과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걸까.


가파르고 거친 등로는 해발 350미터의 주어고개로 내려선다. 고개 너머 송전선을 따라 앵자봉 능선으로 들 것인지 잠시 망설여진다. 찬 공기 속에서 세 시간여 험로를 걸었으니 피로가 몰려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고갯마루까지 반듯하게 닦아 놓은 임도 축대에 걸터앉아 요기를 하며, 앵자봉 대신 주어리 원점으로 직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일행 모두 예전에 양자산과 앵자봉을 오른 적이 있어, 앵자봉 코스를 접는 아쉬움도 덜하다.

앵자봉 기슭에는 주어사(走魚寺)라는 옛 절터가 있고, 산북면에는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벌여 80만 대군을 물리치고 강동육주를 되찾은 서희 장군을 비롯해 원상, 이신록 등 세 재상이 살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앵자봉 주어사지는 1779년 권철신이 서학을 공부하며 정약전, 김원성 등 제자들과 함께 강학을 통해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상 체계를 모색했던, 우리나라 천주교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기실 그곳은 인조 16년(1638년) 이전에 창건되어 19세기 중엽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어사(走漁寺)가 있던 자리다. 여주시와 불교문화재연구소의 두 차례 조사 결과, 다섯 채의 건물지와 고대 인도 문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 본존불을 모셨던 법당 터가 확인되면서 주어사지는 불교와 천주교의 역사를 함께 품은 공공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병풍처럼 펼쳐진 양자산과 앵자봉의 긴 능선 사이,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날렵한 물고기를 닮은 좁은 골짜기를 따라 약 3킬로미터를 내려 주어리로 향한다. 주어천을 끼고 난 산록에는 저마다 다른 얼굴의 전원주택들이 띄엄띄엄 들어서 있다. 양자산과 앵자봉에 얽힌 신랑바위, 가마바위, 병풍바위, 각시바위, 기업바위, 아들바위의 설화들—윤리에 어긋나는 본능을 경계하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던 이야기들이 산행 기점 주어리 입구의 안내판 내용처럼 떠올랐다.

주어리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의 오래된 시간을 증언하듯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고목 군락이 맞아준다. 차에 올라 남이 고개를 넘어 광주시 경계로 들어섰다. 장지리에서 뜨끈한 해장국으로 잔뜩 움츠렸던 몸을 풀고, 중대물빛공원을 걸으며 산행의 여운을 천천히 갈무리했다. 머지않아 입춘이다. 꽁꽁 얼어붙은 물빛공원의 수면도 눈 녹듯 풀릴 터. 우리네 인생 또한 그렇게, 막힘없이 풀려가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26-01-31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