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응팔, 고래사냥의 추억

응답하라 1988!

by 꿈꾸는 시시포스

몸도 마음도 팔팔하던 그때, 시절도 팔팔했던 1988년이었다. 소위 잘 나간다는 족속 축에도 끼지 못하고 정신이나 신체에 장애도 없는 건장한 대한민국 사내로 태어났으니 군 입대는 필연이었다. 당시 군 복무기간이 기본이 삼십 개월이었으니 국방부 시계가 더뎌도 너무나 더디게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오월 논산 산벌의 진흙밭 야간 행군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군 생활도 어언 두 해 반이 지나고 전역이 목전에 다가와 있었다. 군록이 쌓인 말년이라 병영 생활은 몸에 익숙하고 선임들도 몇 남아있지 않아 내무반 생활도 한결 여유롭고 편안했다.


돌아보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논산 훈련소로 향하면서 일면 사회로부터 도피하다시피 가슴 후련한 마음도 없지 않았었다. 이제 머지않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조금씩 다가오니 기다림 반 두려움 반 가슴 한 구석에서 시작된 미묘한 감정의 파문이 점점 커져 온 몸으로 번졌다.


정해진 규율과 틀에 박힌 울타리 속 생활을 벗어나 ‘각자도생’의 세상으로 돌아갈 날이 하루하루 다가왔다.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며 피어오르는 아련한 그리움과 두려움, 바깥세상은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신기루의 꿈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심벌처럼 본능과도 같았고, 좀체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굴레나 거추장스러운 거적과도 같았다.


그래 가자! 동해 바다 깊고 푸른 미지의 심연 속에 숨어 있을 고래 잡으러. 고래사냥 출정은 이러한 세상으로의 회귀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을 잊어보려는, 또는 비록 늦긴 했으나 남자라면 의례히 거치는 통과의례를 치르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마음 좋은 선임 두어 명과 용병처럼 개성 뚜렷하고 출신도 다양한 입대 동기들 몇몇이 야심 찬 포경선단을 꾸렸다. 단출했지만 다들 고래사냥에 대한 일념과 각오를 가슴마다 아로새기고 있는 듯 비장한 모습까지 엿볼 수 있었다.


포경선단 구성을 마치고 출항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를 며칠, 드디어 출항의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 수평선 너머로 갓 떠오른 초여름 햇살이 산등선을 타고 불어오는 미풍에 일렁이는 바닷물에 반사되어 더욱 투명하고 밝게 다채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선단의 목적지는 근해가 아니라 고래가 많이 출몰하는, 우리의 아늑한 보금자리가 된 ‘제3군ㅇㅇㅇ’ 항에서도 제법 먼 ‘xx의원’이라는 다소 낯선 섬 근처였다.


그 섬은 망망대해에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모진 풍파를 견디며 삶을 이어가는 몇몇 섬들 사이 돛단배처럼 파도에 잠길 듯 일렁이고 있었다. 무인도에 둥지를 튼 갈매기들은 끼룩끼룩 대며 투명한 햇살에 하늘로 솟구치는 마파람을 맞아 하얀 날개를 활짝 펴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숨을 죽이며 기다리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고 설렘과 기다림이 지루함과 한낮의 노곤함으로 바뀌어갔다. 바로 그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검푸른 등짝을 수면 위로 드러내며 물을 뿜는 거대한 고래 한 마리를 보았다. 저마다의 입에서 크~ㄴ 외침이 터져 나왔다. 고 ㄹㅐ ㄷㅏ!


그리고 거대한 고래와의 만만찮은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다. 바늘을 꽂고 칼로 자르고 밧줄로 묶고,... 비록 손에 피를 묻히는 힘든 싸움이었지만 우리 선단 각개의 투지와 능란한 솜씨는 실로 빛나는 것이었다.


고래사냥이 끝이 나고 배 옆구리에 고래를 매달고 우리는 개선장군 마냥 의기양양하게 모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다리는 엉거주춤하게 풀렸고 피곤과 고래잡이 후에 밀려오는 알지 못할 허탈함으로 항구로의 귀환은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럴 때 꼭 어울리는 말이'상처뿐인 영광' 일까? 캐리비안 먼바다에서 삼 일간의 지난한 고투 끝에 잡은 거대한 청새치를 상어 떼한테 약탈당한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老漁夫 산티아고의 심정이 이랬을까. 모항으로 향하는 길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 위로 저녁노을이 꼬리처럼 선미에 길게 드리워졌다.


선장을 비롯한 선단 단원들 모두가 말을 잊었고 물살을 가르는 뱃머리만 노곤한 듯 낮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나서 더 성숙(?)해 지기 위해 앞으로 치러야 할 아픔들을 지레짐작들 하고 있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올림픽의 열기로 팔팔 끓어오르던 88년은 그렇게 팔팔하게 지나갔다. 나의 1988, 응답하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