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패딩과 패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할까?

by 꿈꾸는 시시포스


주말 이른 아침 공기가 차갑다. 그믐달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아파트 위 동쪽 하늘 나직이 실눈을 뜨고 있다. 지하철역 입구로 들어서는데 갓 구운 바게트 빵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스크린도어 속 보이지 않는 철로로 들어올 전철은 미명의 어둠 속 터널을 질주하여 더 크고 넓은 도심으로 공항으로 근교 산으로 또는 각자의 목적지로 사람들을 태우고 가서 내려놓을 것이다.

태평에서 전철 문이 막 닫힐 무렵 검은색 롱-패딩 차림 여학생이 달려들어 옆 빈자리에 앉는다. 애써 참는 가쁜 숨결이 어깨를 타고 전해온다. 숨이 고르게 돌아오자 전철 앞줄에 앉은 젊은 남녀들처럼 이내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수서에서 환승한 3호선 전철 안은 대체로 한산하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던 시인 유하의 그 압구정동 지하를 통과한다.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 국화빵 기계, 지하철 자동 개찰구" - 유하 -


그의 말처럼 아직도 압구정동은 "욕망의 평등사회이자 패션의 사회주의 낙원"인지 궁금하다.

지난해 겨울에 이어 올해도 겨울 패션의 아이콘 중 하나는 롱-패딩이다. 가벼우면서도 추위를 잘 막아주는 기능성, 비교적 저렴하다는 경제성, 그리고 보기에 좋은 디자인의 유려한 멋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 아닐까?

롱-패딩은 바람 부는 날 압구정식 비뚤어진 욕망의 분출이 아니다. 누군가는 천편일률적인 롱 패딩을 '몰개성적 패션'으로 폄하할지도 모른다. 아무러면 어떠랴!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삶의 투영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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