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휴가를 얻어 해외여행을 가는 호사는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업무상 해외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이른 새벽이나 저녁 등 자투리 시간을 아껴서 출장지 주변을 겉핥기 식으로나마 둘러보는 부지런을 떨곤 한다.
요즘은 말 그대로 글로벌화 시대라 그런지 업무 관련 해외출장을 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동남아, 유럽, 미주 등 여러 나라를 비롯해서 금년에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다.
출장 중 자투리 시간 짬을 내서 주로 찾는 곳은 이른 새벽 호텔 주변 공원이나 날이 저문 도시 중심가 명소 등이다. 혹여 좀 더 여유 시간이 생기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는다.
브뤼셀은 90년대 후반 약 6개월간 체류한 적이 있어 내게도 친근한 도시다. 브뤼셀에서 잠시 짬을 내어 들를 만한 곳 중 하나가 브뤼셀 왕립미술관이다.
런던의 브리티시 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등과 비교해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관람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유명 박물관들과는 달리 비교적 찾는 사람들이 적어 고전과 근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미술품과 조각들을 호젓하게 감상할 수 있다.
서양 고전 화가들이 가장 즐겨 그린 장르의 하나가 성서를 주제로 한 성화(聖畵)이다. 서양의 종교화 들은 성서의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일부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문맹률이 높았던 일반 평민들에게 종교의 교리를 쉽게 널리 알리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성화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어 보는 재미와 함께 읽는 재미를 덤으로 안겨 준다.브뤼셀 왕립미술관에서 우연히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의 작품 ‘아담과 이브(Adam and Eve)’를 만났다. 잘 알다시피 ‘아담과 이브’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언급된 선악과(善惡果)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다.
“그리하여 여자가 보니 그 나무는 먹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도 소담스러운 것이었다. 정말로 탐스러워 보이는 나무였다. 그래서 그는 그 열매를 따서 먹었다. 그 후 함께 있을 때에 남편에게도 얼마를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구약 창세기 3장 6절>
성경에 따르면 여자인 이브가 뱀의 유혹으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사과를 먼저 먹고 아담에게도 먹어보라 권한다. 둘 사이에 사과나무가 한 그루 서있고 나무 가지에서 뱀 한 마리가 이브에게 속삭인다. 창조주가 먹기를 금지한 금단의 열매가 사실은 ‘지혜의 과일’이니 얼른 깨물어 보라고.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아담은 나뭇잎으로 중요 부위를 가리고 있다. 이에 반해 이브는 몸에 걸친 것 하나 없는데도 포즈가 대담하다. 그림대로라면 아마도 아담이 선악과를 먼저 맛보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담이 사과를 먼저 먹었고 이브는 아직 먹지 않았다는 얘기인데, 화가가 성경 내용을 잘못 이해한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걸까? 아리송하다.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 중 '아담의 창조'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구약 창세기 2장 7절>
로마 바티칸 박물관의 천장화 미켈란젤로의 대작 '천지창조'도 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거장 미켈란젤로는 코 대신에 손가락을 통해 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배가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유명하거나 아름다운 그림도 그 그림 속에 담긴 의미를 모른다면 말 그대로 '그림 속의 떡'일뿐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