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한 장마가 물러가려는지 하늘에 구름이 높다. 친구와 산행 약속을 하고 춘천으로 가는 길이다. 외곽순환도로를 경유해서 들어선 경춘고속도로는 주차장처럼 빽빽이 들어선 차량들이 엉금엉금 움직이고 있다. 정체 속에 갇혀버렸다.
여름의 막바지 필시 동해 바다나 계곡으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다. 경춘고속도로는 춘천-양양 고속도로 개통 후 더 몸살을 겪고 있다. 무엇인들 그렇듯 도로도 사람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조바심으로 뒤척이는 나와 달리 승객 대부분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개의치 않는 듯하다. 아마도 춘천 사람들은 몸에 인내심이 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불가능한 일은 일찌감치 쉽게 체념해 버리는 것이 익숙해졌다. 애써 권할 일은 아니지만 적당히 체념하는 법을 몸에 익히면 조바심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일도 필시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장거리 버스를 타고 애써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는 때가 있다. 참 난감한 일이다. 그렇지만 다행히 오늘은 그 반대로 꿀떡처럼 달콤한 단잠이 찾아왔다. 가끔 눈을 떴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빠뜨리며 빠져드는 잠. 그 단잠 속의 꿈. 그렇지만 아쉽게도 휘발성 강한 그 꿈은 기억해 내기가 쉽지 않다.
흔들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주경야독의 밤들, 흐트러진 실타래 같은 좁고 가파른 서울 달동네 골목길, 희망의 실마리를 찾아 절망의 변두리를 헤매던 젊은 날들,... 시간이라는 누룩에 농익은 향기로운 술처럼 이런 쓰린 기억들도 가끔 달콤한 꿈으로 되살아나곤 한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숲 하늘 뭉게구름.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은 바다 위에 하얀 돛을 활짝 펼친 범선 선단처럼 무리 지어 피어올랐다.
기차로 오기로 한 M은 제시간에 맞춰 춘천역에 도착했더란다. 오늘 가기로 한 목적지 팔봉산으로 먼저 출발하라고 해도 기다리겠다고 한다. 시간 반이면 도착할 춘천까지 곱절인 세 시간 반을 넘게 잡아먹었다.
춘천 터미널에서 그를 만나 가까운 삼악산으로 목적지를 바꾸고 3번 버스를 탔다. 좁은 2차선 도로를 곡예하듯 달린 버스가 강촌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폐쇄된 옛 강촌역 옆 북한강 위로 놓인 다리와 경춘국도를 건너서 육교 옆으로 빼꼼히 난 들머리로 올라섰다.
등선봉까지는 거의 가파른 일직선 코스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성큼성큼 고도가 올라간다. 땀이 비 오듯 하지만 산 아래서 기슭을 타고 상승하는 강바람이 시원해서 걷기에 좋다.
등선봉은 바위에 박힌 철심 계단을 밟고 또 밧줄도 타고 올라야 정상을 허락한다. 춘천에서 소양강과 합류한 북한강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다가 삼악산을 휘돌아 서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화악, 민둥, 명성, 연인, 청계 등 경기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632미터 등선봉을 지나면서부터 능선길을 따라 기왓장 조각이 자갈을 흩어놓은 듯 깔려있다. 춘성군 신북에 있던 맥국(貊國)이 적을 피해 이곳에 산성을 쌓고 궁궐을 지었단다. 그 후 후삼국 때 궁예가 왕건과 싸운 곳으로 궁궐을 짓고 흥국사를 세웠단다.
등선봉은 고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청운봉으로 솟아오르며 가까이 춘천 시가지와 의암호 한가운데 붕어섬, 멀리 소양강 댐과 그 너머 용화, 오봉, 봉화, 마적, 부윤, 사명 등 춘천을 감싸 안은 산들을 펼쳐 놓는다.
박달재로 내려왔던 능선은 마지막 고삐를 틀어쥐며 삼악산 최고봉 해발 654미터 용화봉으로 힘겹게 달음질한다. 삼악이 등선, 청운, 용화 세 봉우리를 의미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넓적한 자연석을 깔아 어른 키 넓이로 수고로이 놓은 가파른 333계단이 낯익다. 그 계단을 내려서면 점점 커지던 물소리가 계곡이 되어 흥국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마당에 세운 지 오래돼 보이지 않는 탑과 단출한 대웅전만 자리한 흥국사를 둘러보았다. 후삼국 통일의 웅지를 품었던 궁예의 이루지 못한 꿈과 한이 서린 곳이다.
등선폭포로 내려가는 길은 크고 작은 폭포들이 소리의 향연을 펼쳤다. 너른 바위가 있는 곳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땀을 씻었다. 약초꾼 두 명이 계곡을 가로질러 계곡 둔턱을 오르며 막대기로 잡초를 헤친다.
바위 절벽 사이 협곡은 물소리가 우렁차고 그 위로 잔교를 놓아 길을 만들었다. 비룡, 백련, 승학, 등선 등 연이어 나타나는 폭포의 절경에 감탄사 연발이다. 서늘한 계곡을 뒤로하고 날머리로 향했다.
등폭 아래쪽에 몰려있는 식당 대여섯 곳 중 한 곳에 들러 막국수를 두 그릇 시켰다. 30년째라는 주인장 말대로 백설탕, 식초, 고추냉이를 넣고 육수를 부어 말았다. 춘천 시내로 가는 버스 시간에 쫓겨 헐레벌떡 그릇을 비웠다.
친구 M은 춘천에서 군 복무를 했더란다. 예하부대를 2개월씩 돌며 파견 근무를 했던 내겐 춘천 보급대대와 급양대에서의 짧은 군생활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 조식으로 나온 스팀 샌드위치, 찐 달걀, 딸기 잼의 달달한 맛, 선임병과 외출 나와 들렀던 명동의 카페, 소양강변도로 가로수에 핀 상고대,... 기억의 잔상은 멀고 어렴풋하다.
언제 춘천엘 다시 한번 와야겠다. 그때는 닭갈비도 먹어 보고 눈 내리는 겨울날이라면 명동 거리를 걷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물거리는 젊은 날의 기억들이 되살아 날지도 모를 일이다.
친구는 청춘열차를 타러 남춘천역으로 향했다. 나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일곱 시 반 출발 버스를 탔다. 피곤한 몸이 시원한 버스의 폭신한 좌석에 깊이 안겨들었다. 국도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버스는 춘천을 벗어나고 있다. 달콤한 꿈이 찾아오면 좋겠다. L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