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글 블로거를 처음 시작한 건 2007년이었다. 그때는 그냥 써보고 싶었다. 일기처럼, 기록처럼, 생각이 머무른 자리에 단어를 남겨두고 싶었다. 특별한 전략도 없었다. 그저 내 삶의 파편들을 하나씩 쌓아가며 글을 남겼다. 세월이 흘러 벌써 18년이 넘었다. 그 사이 나는 수없이 많은 것을 겪었고, 그만큼 많은 글이 쌓였다. 가끔은 수필을 썼고, 가끔은 철학적인 단상을 남겼으며, 1년에 10편 쓴적도 있고 500편이상 쓴적도 있다. 당연히 500편 쓴 해가 가장 어려운 해였다. 그렇게 나만의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기록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구글 블로거 불편함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글은 계속 쌓이는데, 정리할 방법이 없었다. 구글에서는 블로거 사이트는 거의 잊혀진 것 같았다. 주제별로 분류하지 못하고, 그냥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줄로 늘어나는 구조였다. 예전 글을 찾으려면 하나하나 내려가야 했고, 서치 기능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글이 많아지니 단순한 보관이 아니라, 잘 정리된 기록이 필요해졌다. 시간에 묻혀 사라지는 글이 아니라, 가끔씩 꺼내 읽을 수 있는 나만의 기억들.
그래서 수개월전 네이버 블로그로 마이그레이션을 시도했다. 편집 기능도 좋고, 카테고리도 잘 정리 할 수 있어 훨씬 체계적인 구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했다. 너무 상업적이었다. 내 글에 왜 그렇게 페인트 광고가 달리는지 이해하지를 못했다. 댓글을 달면서 답방을 유도하고, 좋은 글보다는 광고가 중심이 되는 구조.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클릭을 유도하거나 주목을 받기 위해서가 아닌데, 그 세계는 나와 결이 달랐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나는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곧 마음이 편해졌다. 브런치에는 작가적인 태도가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글을 묶어서 하나의 책처럼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주제 없이 써도, 나중에 정리해서 브런치북으로 엮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를 설레게 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바래온 글쓰기의 형태였다.
나는 지금도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어떤 글은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설계이고, 어떤 글은 여행지에서 떠오른 단상이다. 또 어떤 글은 철학과 감정, 건강에 대한 내 나름의 통찰을 담고 있다. 물론 아무때나 머리속에 떠오른 잡글이 대부분이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경제적 보상을 바라서도 아니다. 글을 써서 경제적 이득을 취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것은 전문작가의 영역이다. 감히 내가 꿈꿀일은 아닌 것을 안다. 다만, 내가 살아온 궤적과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다. 어느 날이 되면, 이 글들이 차곡차곡 모여 한 권의 책이 되겠지. 그 책은 교보문고 POD로 나올 수도 있고, 북크크나 북팔 같은 독립 출판 플랫폼을 통해 내 손에 들어올 수도 있다. 대부분은 무료로 출판할 수 있고, 내가 직접 몇 권 구매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거나 내 책장에 보관하면 그만이다. 나는 나만의 삶을 기록하고, 그것을 형태로 남긴다는 데서 깊은 만족을 느낀다.
글을 쓰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단지 내 삶을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을 담고 싶다. 브런치는 그런 나에게 딱 맞는 장소다. 내가 자유롭게 쓰고, 정리하고, 결국엔 책으로 엮을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하지만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쓴다. 세상에 공개된 나만의 아카이브를 한 줄씩 쌓아가며.
더 나아가,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화가 진행되고, 지금처럼 또렷한 생각이 흐려질지도 모른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벌써, 운전하면서 떠오른 생각이 주차하고 집에 들어오면 도데체 생각이 안난다. 그래서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지금 이 순간 번뜩이는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그 생각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고 기록하려 한다. 글을 쓰는 이 행위가, 단지 기억을 붙잡기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어쩌면 나의 인지력을 유지하고 노화를 늦추려는 작은 저항이 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글 속에 붙들어두려는 이 시도야말로, 나의 삶을 지키는 조용한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