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먹을 각오하고 쓰는 글
한 세대 전만 해도 여성들의 삶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되었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는 많은 자녀를 낳고 기르면서, 세탁기나 냉장고, 밥솥 같은 기본적인 가전도 없이 하루하루를 노동으로 채워야 했다. 빨래는 손으로 하고, 설거지도 손으로 하고,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 속에서 잠시의 여유도 없던 삶이었다. 그 이전의 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주로 이런 여성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하기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세탁기, 청소기, 식기세척기 등 대부분의 기술은 가사노동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고, 실제로 여성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기여해왔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들도 많아졌다. 일부에서는 이를 개인의 자유나 권리의 진전으로 바라보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 구조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조짐도 있다. 여성의 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남성의 전통적인 역할은 점차 축소된다. 이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자연계의 일부 생물들에게서도 유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벌이나 개미처럼 모계 중심의 사회를 유지하는 생물들에서는 수컷의 역할이 번식 외에는 거의 없다. 일벌과 일개미는 모두 암컷이고, 수컷은 번식 후 생을 마감하는 존재로 기능한다. 인간 사회에서도 예외적으로 여성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동체가 존재하는데, 대부분의 생태학적 연구에 따르면 그러한 사회는 남성의 사회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고, 여성들이 경제와 가정의 중심 역할을 맡는다. 물론 이는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사회학적으로는 하나의 참고 지점이 될 수 있다.
인류 역사 전반을 살펴보면 남성은 가정을 부양하고 전쟁과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역할을 해왔다. 이는 힘의 논리가 아닌 보호의 논리였고, 그 중심에는 지켜야 할 가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남성이 가정에서의 권위와 책임을 상실한 채 단지 생존을 위한 노동력이나 번식 수단으로만 여겨진다면, 과연 남성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동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군복무나 위험 직무도 결국 사회적 보상과 인정이 따르기에 감내해 온 것인데, 그 균형이 깨진다면 역할 수행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최근 사회는 결혼과 가족, 역할의 의미가 급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맞이하는 구조였으나, 이제는 장모가 사위를 맞이하는 문화로 변화되었고, 신혼집에 부모가 방문하기 위해서도 자녀의 허락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는 존중의 표현일 수도 있고, 사생활 보호의 일환일 수도 있으나, 분명히 예전과는 다른 규범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는 시대적 흐름일 수 있지만, 동시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구조는 균형의 회복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사회는 발전해야 한다. 과학기술도, 제도도, 개인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발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를 때, 균형을 잃고 마찰을 낳게 된다. 여성의 권리가 커지는 것은 사회적 정의이자 인권의 진보이다. 동시에 남성의 역할과 책임 또한 재정의되고 존중받아야 한다. 가정과 사회는 상호 협력과 균형 속에서만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인간은 본능이 아닌 문화와 이성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자연의 법칙을 단순히 복제할 필요는 없지만, 그 법칙이 내포하는 균형의 의미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남녀의 대결이 아니라 공존이다. 과거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또 다른 극단으로 흐른다면, 우리는 또 다른 불균형을 초래하게 될 뿐이다. 서로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상호 존중 속에서 함께 사회를 이끌어가는 길이 필요하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사회 전체의 방향은 모두의 몫이다. 균형을 잃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자연의 법칙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