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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할수록…

by 라온재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한 가지 역설적인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순간을 준비하면 준비할수록,
오히려 지금의 삶이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남은 시간에 대한 애착과 함께,
더 절실하게, 더 뜨겁게, 살아내고 싶어집니다.


저는 지금 제 삶의 마지막 장면을 서서히 구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장례식을 계획하고, 호스피스로 가는 시점까지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며 이상하게도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입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하고 나다운 삶.
곧 다가올 저의 슬로매딕 라이프(Slowmadic Life) 말입니다.


지금 제게 남은 시간은 14개월,
1년 조금 넘는 기간이 지나면 저는 정든 일터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은퇴가 끝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짜 삶의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 시작은 정착이 아닌 이동입니다.
속도를 늦춘, 그러나 멈추지 않는 여행.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과 동시에 세계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슬로매딕이라 부릅니다.
느리고 자유로운 유목민적 삶.

슬로매딕 라이프는 단순한 해외여행이 아닙니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여행도 아니고, 숙소를 전전하는 도피도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깊고 느린, 삶을 경험해보는 실험입니다.

나는 어디에서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언어와 문화 속에서, 어떤 사람들과 살아갈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저는 직접 발로 걷고 눈으로 보며 찾아가고 싶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 저는 한 가지 중요한 결심을 했습니다.
바로 무소유의 삶입니다.

집을 팔고, 물건을 정리하고, 불필요한 모든 유형의 재산을 놓고 나면
저에게 남는 것은 딱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나 자신,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연금과 자산입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버리기로 했습니다.
무소유는 단지 물건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집착하지 않겠다는 선언,
즉 떠날 수 있는 삶, 머물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어디서든 살 수 있는 삶.
필요할 때는 떠나고, 머물고 싶을 땐 오래 머무르며
지루해지면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는 자유.
그 자유는 가볍게 사는 데서만 가능해집니다.


저는 은퇴 후의 삶이 곧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무겁고 슬프게 살아가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삶을 더 절실히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죽음을 피하지 않고, 그 마지막 장면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면
매일의 시간이 더욱 소중해집니다.
한 도시에서 한 달을 살아보는 경험,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즐거움,
낯선 이와 친구가 되는 기적 같은 하루.
이 모든 것이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선물이 됩니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아는 자만이
그 삶을 진짜로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지금까지 은퇴를 준비해온 이유입니다.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전까지 모든 삶의 찬스를 누리기 위해서.


제가 은퇴 후 꿈꾸는 삶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모든 곳을 살아보는 삶입니다.
지중해의 어느 해변에서 두 달을 살고,
안데스 산맥 아래에서 골프를 치고,
멕시코의 오래된 도서관에 앉아 글을 쓰는 그런 삶.

그러다 문득,
여기서 좀 더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곳에서 비자를 연장하고, 한 해를 살아보고,
그 문화와 언어를 익히고, 사람들을 알아가며
마치 그 나라의 국민처럼 살아보는 것.

그렇게 세상을 살아보고,
지루해지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나며
삶의 끝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저는 한 장면 한 장면을 영화처럼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은 결론이 없습니다.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삶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내 삶의 결론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은퇴 이후의 20년은 그 결론을 아름답게 써 내려가는 시간입니다.

죽음을 계획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완성을 향한 마지막 열정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다시금 생각합니다.
죽음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그리고 그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낼 때,
나의 마지막 장면은 어느새 가장 빛나는 한 컷으로 완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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