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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과 긍정 정서

by 라온재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젊은 날엔 무심히 지나쳤던 이 단순한 일상이,

요즘은 이상하리만큼 고맙게 느껴진다.


감사라는 감정은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오래 바라보고, 오래 견뎌낸 이에게만 주어지는 조용하지만 깊은 감정의 결실이다.


예전에는 갖지 못한 것에 더 많은 감정을 쏟았다.

더 좋은 직장, 더 큰 집, 더 화려한 삶을 향해 달리며

불만과 아쉬움이 마음을 채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부터

이미 가진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탈한 건강.

곁에 있는 사람들.

하루를 지켜주는 익숙한 풍경들.


이런 감정의 변화는 단순히 심리적 성숙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뇌 속의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이러한 변화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세로토닌은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 불린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긍정 정서와 안정감을 조율하는 물질이다.

불안, 분노, 우울 같은 감정을 잠재우고

감사, 만족, 평온함을 차분히 끌어올린다.


노년기에는 뇌의 감정 시스템도 변한다.

빠른 쾌락이나 강렬한 자극보다는

지속적인 안정과 내면의 평화를 더 중시하게 된다.

젊을 때처럼 도파민이 이끄는 열정은 줄어들지만,

세로토닌이 만들어내는 조용한 행복은

점점 더 소중해진다.


흥미롭게도, 감사하는 마음 자체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는 연구도 있다.

감사를 자주 느끼는 사람은 전두엽 활동이 활발하고,

감정 회복력도 더 크다고 한다.

결국 감사는 단순한 마음의 자세가 아니라,

뇌가 스스로 택한 생존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감사는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그 감정은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인생의 덧없음을 배운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더 잘 웃고,

더 자주 고맙다고 느낀다.


젊은 날엔 빠르게 지나쳤던 삶의 장면들이

이제는 천천히 걸으며 곱씹는 시처럼 다가온다.

그 시의 한 줄, 한 단어마다 감사가 스며 있다.


오늘도 이런 하루를 누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고맙고,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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