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갈등 없어요. 처음부터 다 정했으니까요. 계약동거를 택한 이들 중 일부는 그렇게 말한다. 사생활 존중, 재정 분리, 성적 합의 여부, 심지어 명절 귀성 계획까지 미리 문서화한다. 이 모든 조율은 예상되는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지혜에서 비롯되었다. 언뜻 보면 완벽한 방식이다. 오랜 부부 생활에서 부딪쳤던 수많은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착각을 계약은 제거해준다.
그러나 계약은 관계를 명확히 구획 지을 수는 있어도, 감정을 통제하진 못한다. 서운함은 계약에 없는 감정이라 처리 불가입니다. 계약은 이렇듯 인간적인 복잡성을 포착하지 못하는 법이다.
한 달 단위로 갱신하는 월세계약처럼, 사람의 마음도 유동적이다. 처음엔 독립적인 생활을 원했으나 점차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기대가 생긴다. 어느 날 파트너가 여행을 혼자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계약서엔 명시된 자유지만, 마음은 불쾌함을 감춘다. 계약상 문제 없어요. 다만, 이제는 같이 가길 바랐어요. 이 말은 갈등의 시작이기도 하다.
고정된 조항이 사람의 감정까지 고정시키진 못한다. 감정은 예고 없이 자라나고, 어떤 감정은 예정보다 일찍 시들기도 한다. 이때 계약은 오히려 서로의 변화를 억제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전세계약은 통상 2년이다. 계약 만료가 다가오면 이사 준비를 하듯, 계약동거도 재검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이처럼 날짜를 기준으로 결론내기 어렵다. 서로의 습관에 익숙해졌고, 정이 생겼고, 책임 아닌 애정이 남았다면? 이별조차 명료하게 정리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한 쪽이 감정적으로 더 깊어졌다면 계약이 오히려 배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계약 해지 조항은 필요하다. 계약은 종료되었지만, 당신과의 시간은 소중했습니다. 이 한 마디를 건넬 수 있으려면, 처음부터 이별까지도 합의된 관계임을 서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계약동거를 인간관계의 가장 진화한 형태라 말한다. 책임도 없고, 소유도 없으며, 효율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질투하고, 후회한다. 계약서로는 감정을 규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감정 없는 관계는 가능할까? 가능하다. 그러나 그 관계는 지속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결국 우리가 찾는 것은 안전한 틀 안에서의 정서적 교감이다. 계약은 안전을 준다. 그러나 감정은 위험 속에서 피어난다.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황혼의 계약동거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계약은 명료함을 준다. 그러나 그것이 곧 문제 해결은 아니다. 오히려 갈등의 모양을 바꿔 놓을 뿐이다. 부부 싸움은 없어졌지만, 침묵이 늘었다. 돈 문제는 해결됐지만, 정서적 외로움은 여전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계약이 관계의 모든 것을 명확히 했을 때, 오히려 우리는 인간관계의 모호함을 그리워하게 된다.
계약동거는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그 선택이 그림자를 만들지 않도록, 우리는 여전히 인간관계라는 오래된 숙제를 풀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