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가 멈춘 생명체
대서양의 깊은 바다, 푸르른 어둠 속을 유영하는 랍스터는 인간의 눈에 오랜 시간 신비의 생물로 여겨져 왔다. 그 이유는 단순히 육중한 몸집이나 단단한 껍질, 혹은 붉게 변하는 요리의 색깔 때문만은 아니다. 랍스터는 생물학적으로 노화라는 개념에서 거의 자유로운 존재로, 지구상의 수많은 동물 중 유일하게 노화로 인한 죽음이 거의 없는 생명체로 꼽힌다.
보통의 동물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세포의 노화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신체 기능이 점차 저하되다가 결국은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랍스터는 다르다. 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세포의 기능 저하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 비밀은 바로 텔로머라아제라는 효소에 있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세포 분열이 반복되면서 텔로미어라는 염색체 끝부분이 점점 짧아지지만, 랍스터는 텔로머라아제가 평생 활발히 작동하여 텔로미어가 줄어들지 않는다. 이 덕분에 랍스터의 세포는 어린 시절과 다름없는 활력을 오래도록 유지한다.
노화가 없는 삶, 이는 인간이 꿈꾸는 궁극의 이상이 아닐까. 랍스터는 주기적으로 탈피를 한다. 낡고 작은 껍질을 벗어던지고, 새롭고 커다란 껍질로 갈아입는다. 이 과정에서 몸의 손상이나 노후한 부분도 새롭게 재생된다. 마치 한 겹의 과거를 벗고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다. 인간이 나이 듦과 함께 피부에 주름이 늘고, 신체 곳곳이 기능을 잃어가는 것과는 정반대다.
이 신비로운 탈피 덕분에 랍스터는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랍스터의 생리학적 기능, 번식력, 체력은 수십 년이 지나도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개체는 100년을 훌쩍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히 움직이며 바닷속을 누빈다.
그렇다면 랍스터는 정말 영원히 죽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자연은 완전한 불멸을 허락하지 않는다. 랍스터도 결국엔 죽는다. 대개의 경우 탈피 실패가 원인이다. 나이가 아주 많아지면 점점 껍질을 벗는 일이 힘겨워지고, 탈피 과정에서 힘이 부족해 껍질을 완전히 벗지 못하거나, 탈피 중 상처를 입어 생을 마감하게 된다. 또한 감염병이나 환경의 변화, 심지어 인간의 그물에 걸려 요리 재료가 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랍스터는 생물학적 노화에 의해 생을 마감하는 일은 거의 없다. 만약 인간이 이 신비로운 생물처럼 텔로머라아제가 평생 작동한다면, 그리고 주기적으로 몸을 재생하는 탈피의 마법까지 지녔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끊임없이 젊고, 끝없이 새로운 자신으로 살아가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
랍스터의 비밀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생애가 얼마나 짧고, 노화가 얼마나 필연적인 과정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랍스터가 보여주는 노화 없는 삶은 인간에게는 부러운 신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방식으로 생과 죽음을 맞이한다. 랍스터에게 허락된 영속성은 결국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의 질서 안에서, 또 다른 종의 생존과 연결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우리도 어쩌면, 랍스터의 삶처럼 매일을 조금씩 새롭게, 한 겹씩 어제를 벗어던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완전한 불멸은 없지만, 매 순간 새로워질 수 있는 용기와 변화의 힘, 그게 바로 인간에게 주어진 또 다른 탈피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