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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다가오는 정신병, 그 신호를 알아차리는 법

by 라온재


정신병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낯설고 무섭게 느껴진다. 뉴스에서 가끔 등장하는 조현병 환자의 사고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누군가가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그 시작점, 즉 정신병의 초기 증상이다.


정신병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다. 대개는 조용하게, 서서히, 눈에 잘 띄지 않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징후들은 우리 가족, 친구, 혹은 바로 나 자신에게서 시작될 수 있다.


정신병의 발병 시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조현병이다. 조현병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시작된다. 남성은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여성은 20대 후반쯤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활발하고 바쁜 시기라는 점이다. 진학, 취업, 연애, 사회생활 등으로 삶의 변화가 많은 시기이기에, 이상 징후가 생겨도 단순한 스트레스나 성격 변화로 여기고 넘기기 쉽다.


그렇지만 일부는 30대나 40대, 심지어는 60대 이후에 발병하기도 한다. 특히 약물, 외상 후 스트레스, 수면 부족, 가족력 등은 촉발 요인이 될 수 있다. 늦게 나타난다고 해서 경미한 증상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성인이 된 상태에서 발병하면,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감추려 하거나 부정하게 되어 발견이 더 늦어지곤 한다.


처음부터 환청이나 망상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주 평범한 변화들이 먼저 다가온다. 예를 들면, 집중이 잘 안 되고, 일에 흥미가 없어지고, 감정이 메말라간다. 친구들이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만나자고 해도 귀찮다. 이런 변화는 누구에게나 한두 번쯤 있는 일처럼 보여,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가 수주, 수개월간 계속된다면, 단순한 우울이나 스트레스가 아닌 정신병의 전조 증상일 수도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함께 나타난다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말수가 줄고, 생각이 느려진다.

갑자기 감정 표현이 없어지고, 얼굴이 무표정해진다.

누가 내 생각을 읽는 것 같다, TV가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다 같은 말을 한다.

밤 낮이 바뀌고 수면 패턴이 극단적으로 무너진다.

학교나 직장 생활에서 극심한 부적응이 나타난다.


이런 징후는 혼자서도 알아차릴 수 있지만, 본인은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관찰이 매우 중요하다.


정신병 초기 증상을 알아차리고 치료로 연결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직도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크고, 특히 정신과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정신과 가는 건 미친 사람이 가는 거잖아?라는 말이 아직도 일상에서 들리곤 한다. 하지만 감기 걸리면 내과에 가듯, 정신이 아플 때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게 당연하다. 정신병은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면, 삶의 질을 거의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조현병의 경우, 첫 증상이 나타난 후 1~2년 안에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다면 회복률도 높고 재발률도 낮다. 약물치료와 상담, 그리고 주변의 이해와 지지가 함께할 때, 병은 극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누군가의 눈빛이 달라졌다면, 이유 없이 무기력하다면, 혹은 내 삶이 점점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단순한 게으름이나 기분 탓이 아닐 수도 있다. 마음의 병은 몸보다 더 천천히, 그러나 깊숙이 다가온다.


정신병은 무서운 병이라기보다 모를 수 있는 병이다. 그래서 더더욱 주의 깊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편견 없이 접근할 수 있다면, 많은 이들이 더 빨리, 더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요즘 힘들어?라는 따뜻한 한마디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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