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오늘 Montserrat 산을 올라가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문득 떠올린 것이 Park Güell과 Antoni Gaudí의 디자인이었다. 산 전체가 응집된 자갈과 모래가 물과 바람에 눌려 굳어진 콩글로머레이트(conglomerate) 암석(역암)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지질학적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높은 봉우리들이 톱니처럼 솟아오르고, 바람과 수분이 틈새를 파고들어 얼기설기 깎인 형태가 마치 자연이 직조해 낸 조각물처럼 보였다. 그 형상과 질감이, 얼마 전 도시 속에서 걸었던 파크 구엘 안의 곡선벤치나 조형기둥, 타일 모자이크의 흐름처럼 느껴졌다.
가우디는 자연을 스승 삼았고, 바르셀로나의 언덕과 지형을 디자인에 담아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몬세라트에서 마주한 풍화된 거대한 자갈덩어리들이 만들어 낸 풍경이, 그가 파크 구엘에서 보여준 디자인 언어와 그렇게 닮아 있다는 감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예컨대 벤치의 웨이브 형태나 기둥의 뒤틀림, 유기적으로 흐르는 경로와 담장이 마치 자연이 ‘굳어진 움직임’으로 남긴 것처럼 보인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산의 지형이 마을을 품은 언덕, 도시가 눌러 앉아 있는 땅이라는 맥락에서 가우디에게 영감을 준 가능성도 있다는 글이 있었다. 
지형적으로 말하자면, 몬세라트는 대형 강이 delta fan 형태로 퇴적물을 쏟아낸 후 그것들이 골고루 굳은 암석 덩어리로 형성되었고, 그중 단단한 콩글로머레이트가 주변의 부드러운 지반보다 덜 깎이면서 산악 지형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든 것이다.  이 응고된 ‘흐름의 흔적’이 결국 풍경을 만들고, 그 풍경 속에서 가우디는 흐르고 구부러지고 쌓이고 뒤틀리는 자연의 움직임을 건축물로 옮겼던 게 아닐까. 파크 구엘의 지형에 순응한 회랑과 벤치, 자연석을 살린 단지 설계는 산날들의 곡선이나 돌기둥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가우디가 몬세라트에서 직접 ‘이 풍경이야’ 하고 보고 설계했다는 증거가 명확히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이 주는 형태언어를 도시 속으로 들여왔다는 사실은 오늘의 산행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바르셀로나라는 도시 안팎을 잇는 지질과 도시, 아트와 자연의 대화가 내 안에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언덕 위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보며, 돌과 자갈이 수백만 년의 시간을 압축해 빚어낸 형상이 도시 속 가우디의 곡선 안에 재현되어 있다고 느꼈다.
이런 느낌을 안고 돌아오는 길, 나는 디자인의 발견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자연이 만들어낸 형상, 돌이 굳어가고 깎여가며 만들어낸 공간미학이 결국 인간의 감각 속에 들어와 건축과 조경의 언어가 되었고, 가우디는 그 언어의 훌륭한 통역자였던 것이다. 오늘 몬세라트 산행은 단순한 자연탐방을 넘어, 도시 속 예술과 자연의 접점을 다시 읽는 시간이 되었다. 바람이 돌 틈을 지나고 물이 암석을 스치며 만든 자글자글한 표면 위에서, 나는 도시속 나무 그늘 아래 앉아있던 구엘의 벤치를 떠올렸다. 그리고 문득, 나에게도 이런 언어가 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 하나, 흙 한 줌, 그리고 시간이 만든 형태들이 우리의 삶과 디자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