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ing Fish가 나는 이유

by 라온재

오전에 파워워킹, 그것도 골반의 리드미컬한 반동을 이용한 고난도의 골반 워킹으로 옥상 데크를 돌며 무려 10마일을 주파하고 나면 몸은 마치 잘 구워진 토스트처럼 뜨끈해진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훔치며 크루즈의 조용한 라운지에 자리를 잡았다. 갓 추출한 커피 한 잔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고,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그제야 달궈진 근육이 식으며 평온이 찾아온다. 그런데 평화로운 수평선 위로 무언가 기묘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흰 물체들이 점점이 나타났다가 이내 물속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파도가 부서지는 포말이겠거니 했으나, 그 움직임은 파도라기엔 너무나 의도적이고 규칙적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관찰을 시작했다. 그것들은 단순히 물 위로 점프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수면을 박차고 나온 작은 생명체들은 가슴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활짝 펴고는, 마치 글라이더처럼 매끄럽게 공중을 가로질렀다. 어떤 녀석은 꼬리로 수면을 탁탁 치며 추진력을 얻더니 족히 100미터는 훌쩍 넘는 거리를 우아하게 날아갔다. 몇 주 전 배 위에서 돌고래 떼를 조우하며 탄성을 질렀던 이후, 이 망망대해에서 만난 두 번째 경이로운 생명체, 바로 flying fish-날치였다. 도대체 저 작은 물고기는 무슨 사연이 있기에 지느러미를 날개 삼아 공중부양을 하게 된 것일까.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나는 날치의 조상들이 겪었을 눈물겨운 진화의 역사를 상상해 보았다.


사실 날치의 비행은 낭만적인 산책보다는 목숨 건 탈출기에 가깝다. 바닷속은 겉보기엔 평온해 보여도 실상은 참치 같은 포식자들이 시속 수십 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지옥철 같은 곳이다. 날치의 조상 중 누군가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 동네는 너무 험악해. 저 덩치 큰 참치 녀석들을 따돌릴 방법은 없을까? 물속에서 아무리 꼬리를 흔들어봐야 체급 차이를 극복하기란 역부족이었을 터다. 그러다 어느 날, 엉뚱한 돌연변이 날치 한 마리가 수면 위로 툭 튀어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겠지. 물 밖은 저항이 훨씬 적고, 무엇보다 그 무시무시한 참치들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공중 탈출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소문이 날치 사회에 퍼졌을 리는 없지만, 어쨌든 날 줄 아는 녀석들만 살아남아 대를 잇다 보니 진화의 방향은 확고해졌다. 가슴지느러미는 점점 길어져서 비행기 날개처럼 펴지기 시작했고, 꼬리지느러미 아래쪽은 물을 더 세게 찰 수 있게 비대칭으로 길어졌다. 척추 또한 공중에서 몸을 빳빳하게 버틸 수 있도록 강철처럼 단단하게 진화했다. 말하자면 날치는 바다에서 살기가 너무 팍팍해서 아예 업종 변경을 시도한, 생태계의 벤처 기업가 같은 존재인 셈이다.


물론 하늘 위라고 해서 마냥 안전한 파라다이스는 아니다. 물 밖으로 나오면 이번엔 하늘의 무법자인 군함조나 갈매기들이 입을 벌리고 기다린다. 아래엔 참치, 위에는 갈매기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삶이다. 하지만 날치는 그 짧은 찰나의 비행으로 포식자의 추격을 따돌리는 실익을 택했다. 내가 방금 골반을 흔들며 10마일을 걸은 것이 건강을 위해서라면, 저 녀석들이 100미터를 나는 것은 단 1초라도 더 살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다.


창밖의 흰 점들은 여전히 규칙적으로 수면을 박차고 오른다. 저 작은 몸뚱이로 중력을 거스르며 비행하는 모습이 마치 내 삶의 무게를 견디며 고군분투하는 현대인의 모습 같아 묘한 동질감마저 느껴진다. 커피가 어느덧 미지근해졌다. 물고기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새가 되기를 꿈꾸는 날치의 비행은, 어쩌면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낸 가장 위대한 도망이자 도전일 것이다. 크루즈의 안락한 라운지 의자에 기대어, 나는 다시 한번 수평선을 가르는 저 작은 비행사들에게 마음속으로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그래, 기왕 나는 거 200미터까지 가보렴. 너희들의 진화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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