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항지 투어가 있는 크루즈 여행은 늘 같은 리듬을 가진다. 밤새 항해를 하고, 아침이 되면 항구에 닿아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승객들은 각자 정해진 방식으로 흩어진다. 버스를 타거나, 현지 가이드를 따라가거나, 아무 계획 없이 거리를 걷는다. 두 달째 크루즈 여행을 하다 보니, 이제 기항지는 그다지 반갑지 않다. 처음에는 설렘이 있었지만,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마음이 먼저 닳아버렸다.
항구에 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현지인들의 일상이다. 자전거에 손님을 태워 나르는 사람들, 손으로 만든 팔찌와 나무 조각, 같은 모양의 기념품을 끝없이 늘어놓은 가판대들. 그것이 그들의 삶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장면이 점점 안쓰럽게 느껴진다. 고급 여행을 한다는 이름으로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과, 그들을 기다리며 하루를 버텨야 하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이 너무 선명하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식당과 상점들은 대부분 외지인이 장악하고 있다. 크루즈 승객들이 찾는 곳은 늘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소비되는 돈은 다시 그들끼리 순환된다. 현지인들은 그 주변을 맴돌며 가끔 들어오는 크루즈에 하루의 수입을 기대한다. 관광이 생계가 되어버린 곳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손님을 맞이하는 주체가 아니라 풍경의 일부가 된다.
이 평화로운 항구와 푸른 바다 뒤에는 자본주의의 잔인한 얼굴이 숨겨져 있다. 필요에 의해 방문하는 사람과, 필요에 의해 기다리는 사람. 그 구조는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더 잔혹하다. 여행은 즐거워야 한다고 믿어왔지만, 이곳에서는 즐거움이 누군가의 생존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자꾸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배 안에 남는다. 굳이 내려가 구경하지 않는다. 갑판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는 선택이 이 상황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만큼은 덜 복잡해진다. 크루즈는 계속 항해하고, 기항지는 또 하나 지나간다. 그 사이에서 나는 여행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보고 싶었던 풍경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