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감옥에서 존재의 자유로 – 귀국을 앞두고 드는 마음
미국에서의 삶은 나에게 ‘해방’이었다. 머리카락이 빠지든, 체중이 늘어나든, 옷이 촌스럽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나 자신도.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든, 그것이 사회적 평판이나 존재의 의미를 좌우하지 않았다.
“머리 빠졌다고? So what?”
“살쪘다고? 뭐 어때?”
이런 식의 내면의 자유가, 미국 생활의 배경에 항상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은퇴가 다가오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살아볼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때마다 마음 한켠에 조용히 스며드는 불안이 있다. 그건 바로 ‘시선’에 대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평가의 눈초리 속에 있다. 젊을 때도 그랬지만, 나이 들어서도 예외는 아닐것 같다.
머리가 벗겨지면 ‘자기 관리 안 한 사람’처럼 보이고, 살이 찌면 ‘자기 통제 못 하는 사람’으로 간주되며, 옷차림이 촌스러우면 ‘눈치 없는 사람’으로 비쳐진다.
그 시선이 진짜 문제라기보다는, 그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내 마음이 문제다. 그 안에 내가 다시 갇히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미국의 길거리를 걷다 보면, 기묘한 옷을 입은 사람, 휠체어를 탄 사람, 태닝이 과한 사람, 머리카락이 전혀 없는 사람 등 다양한 외모와 상태의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아무도 신기한 듯 쳐다보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과거가 있는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로 살아간다는 전제가 사회 전체에 공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표준화된 정상성’이 있다. 머리는 풍성해야 하고, 키는 커야 하며, 살은 적당히 빠져야 한다. 그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마치 어떤 ‘잘못’을 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런 시선은 어쩌면 ‘개인의 삶’보다 ‘집단의 기준’이 앞서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며, 한 가지 결심을 해본다.
“다시 시선을 의식하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미국에서처럼, 머리가 빠졌든, 살이 찌든, 주름이 늘었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런 삶은 때로는 외로울 수 있고, 때로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내가 미국에서 배운 가장 값진 삶의 방식이다.
한국에서 ‘시선을 초월하는 삶’을 사는 몇 가지 방법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내적 선언: 한국 사회가 뭐라 하든,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안다. 이 확신이 시선을 이기는 힘이다.
관찰자 시선 갖기: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관찰자로 보는 습관을 들인다. 아, 여기는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상처받지 않는다.
의도적인 개방성과 유쾌한 유머: 머리가 빠졌다는 농담을 스스로 먼저 하며, 나를 가볍게 풀 수 있다.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기 수용을 유쾌하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나만의 커뮤니티 만들기: 미국처럼 자유로운 분위기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작은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간다. 시선을 넘어선 관계는 외로움을 줄여준다.
은퇴 후 한국에서의 삶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서 배운 ‘존재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머리, 나의 몸, 나의 옷차림은 나의 이야기일 뿐, 사회의 판단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 새로운 단계에서도 내 이야기의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