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대상이 아니라 흐름이다

아침 운동에서 발견한 욕망의 작은 실험실

by 라온재

라이프타임 피트니스의 아침은 대체로 비슷하다. 거울 앞에 선 남자들, 러닝머신 위의 땀, 음악보다 큰 숨소리. 나 역시 그 정해진 리듬 속에 몸을 맞추며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익숙하고 기능적인 시간 속에, 어느 날 갑자기 작은 파문 하나가 일었다.


3~4개월 전쯤이었다.

운동 중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시선이었지만, 곧 시선은 시선 그 이상이 되었다. 너무나도 예뻤다. 얼굴도, 체형도, 움직이는 자세도 매끄럽고 조화로웠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머물 때면 무의식 중에 시선을 주고, 운동 자세나 표정, 동선을 지켜보았다. 어떤 교류도 없었지만, 아침 운동에 의미가 하나 생긴 듯한 기분이었다.


희한하게도 그녀를 ‘보는 행위’만으로도 운동이 즐거워졌다. 스쿼트의 반복도 덜 지루했고, 루틴한 기계 동작 속에 작은 생기가 감돌았다. 감정이라기보다는 시각과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나와는 아무 인연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사람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다.

한 두 달쯤 지났을까. 여전히 예쁘고 여전히 내 주변을 지나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감탄은 무뎌졌고, 두근거림은 사라졌다. 심지어는 그토록 기다리던 등장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여성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성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이 모든 현상이 단지 개인적 취향이나 감정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인간 내면의 감각과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을 경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통찰이었다.


감정은 ‘대상’이 아니라 ‘흐름’이다


첫째, 뇌는 새로움에 반응한다.


처음 아름다운 대상을 마주할 때 뇌는 도파민을 분비한다. 도파민은 보상의 기대와 흥분을 동시에 만들어내지만, 반복 노출되면 뇌는 그 자극에 익숙해진다. 이른바 ‘쾌락 순응(hedonic adaptation)’이다. 아름다움이 사라진 게 아니라, 뇌가 더 이상 감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둘째, 욕망은 소유의 욕망이 아니라 이동의 에너지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은 “욕망은 결핍을 향한 끊임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얻지 않았으며, 그저 바라봤을 뿐이다. 그런데 감정은 생성되었고, 이어 지루해졌고, 다른 대상으로 옮겨갔다. 그것은 ‘그 사람’이 만든 감정이 아니라, 내 안에서 흐르는 감정의 회로였다. 감정은 어떤 대상에 고정되지 않는다. 그냥 흘러간다.


셋째, 그 감정은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다.


감각이 움직이고, 욕망이 작동하며, 주의가 이동하는 것. 그것은 욕망을 억제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삶의 생동감이 아직 내 안에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다시 아침에 운동을 간다.

누구를 보기 위해서도, 누구를 잊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의 감각과 흐름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조용히 목격하기 위해서다.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우리 안에는 늘 작은 실험실 하나가 있고, 감정은 그 안에서 계속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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