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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ug 10. 2020

수박, 포도

강릉행ktx에서

퇴근 후 강릉행 KTX에 올랐다. 출발 직전까지 옆자리에 아무도 타지 않아서 내심 기대했다. 혼자서 편히 가려나. 잠시 뒤 뒷자리에는 5-7살로 추정되는 아이 두 명이 내 옆에는 어머님이 타신다. 곧 내 좌석을 발로 차는 건지 손으로 흔드는 건지 쿵쿵거린다.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내 몸도 아이의 박자에 따라 쿵쿵 흔들린다. 내심 경고의 눈빛을 주겠다고 잠시 쳐다봤다. 내 생각보다 더 애기고 별다른 경각심을 못 느끼는 것 같아 다시 휴대폰을 보기로 한다. 퇴근 직후라 피로감이 몰려와 잠이 든다. 조금 시끄러운 것 같지만 내 잠이 더 세다. 얼마나 잤을까 잠시 뒤 잠에서 깬다. 아이 어머니께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괜찮다는 표시 반 조금만 더 조용히 하게 해 주시면 안 되겠냐는 항의 반으로 그냥 웃어 보인다. 남자아이가 종이접기를 하겠다며 엄마에게 색종이를 꺼내 달라 한다. 엄마한테도 접어달라 한다. 엄마는 몇 번 접다 포기하신 건지 좌석 테이블에 접힌 자국이 있는 빨강 초록 양면 색종이가 구겨져 있다. 아이는 엄마한테 또 접어달라 한다. 내심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께 제가 접어도 되냐고 여쭤봤다. 그런 재주가 있으시냐며 종이를 건네주신다. 인터넷에서 종이접기를 검색했더니 빨강 초록 양면 색종이로 만들기 딱 좋은 수박 접기가 있다. 잘 따라 해서 수박을 접어 아이들에게 주었다. 공손하게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니 방금 떠들거나 내 좌석을 쿵쿵 친 기억이 눈 녹듯 사라진다. 흐뭇한 마음으로 책을 좀 읽고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어머님이 갑자기 종이 하나를 주신다.또 접어드릴까 해서 봤더니 여자아이가 수박이 감사하다고 포도를 만들어 나에게 전해달라 했다고 한다. 그 마음이 너무 귀엽고 예쁘다. 아까부터 엄마 옆에서 멤돈이유가 이거였다니. 기차에서 내릴 시간이 되었다.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공손하게 배꼽인사를 한번 하더니 같이 손을 흔들어준다. 기차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는데 아직 기차 앞에 아이들과 어머니가 서있다.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어준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살면 2시간 기차에서도 마음을 나누고 추억이 생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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