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지만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꼭 지녀야 하는 것 중 하나는 꿈이다. 꿈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하고, 인간으로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꿈을 꾸는 인간이다. 꿈이 있을 수밖에 없는 비운의 존재. 언젠가의 나는 달을 수호로 삼는 세일러문이 되고 싶었고, 어린이들이 가득한 나라에서 그들의 왕이 되고 싶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달을 보며 주문을 읊는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읊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내가 신의 계시를 받으면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법소녀로 임무를 수행할 각오를 단단히 먹은 채로.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말하는 고양이가 나타난다면? 그때부터 나는 잠 못 든 채 영원히 달을 바라는 아이가 되지 않을까?
"이끼숲"은 체계적인 판옵티콘에서 지내던 청소년들이 세계의 균열을 발견하고 밖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로, 멈추지 않는 청소년기 아이들의 성장을 보여준다. 이들이 지내는 지하도시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견고하다. 부부의 출산, 아이들의 성장과 같이 모든 변수를 계산 아래에 두고 움직이며, 절대 지상에 나가게 두지 않는다. 지상탐사대가 존재하긴 하나, 마르코의 염원과 달리 쉽사리 모집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꿈이 있어 살아낼 수 있듯이, 인간은 꿈과 목적이 있기에 변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우리는 변하지 않는 인간과 그 사이에서 피어난 희망을 들춰볼 것이다. 언제나 사랑해버리는 아포칼립스 세계의 청소년들로부터 그 희망을 목격할 수 있다.
"바다눈" 챕터의 시선, 마르코는 우연히 만난 은희와 사랑에 빠지고, 노동조합 시위를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능동적인 선택을 위해 걸어간다. 지하도시에서 할 수 잇는 선택은 한정적이다. 일정 나이가 되면 일자리를 찾고,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고 돈을 받으며 살아가기. 일관된 매커니즘 속에서 마르코는 선택하여 은희와의 로맨스를 향해 나아간다. 일이 끝나고 바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은희를 보는 것도, 은희와 연락이 닿지 않을 때 직접 찾아가는 것도 모두 마르코의 선택이다. 그리고 마르코는 그 선택의 결과값으로 치매에 걸린 은희의 어머니를 목격한다.
불편한 진실을 목격하는 것은 성장하기 위한 필수 관문이 아니라, 성장 후에도 겪어야 하는 고통이다. 마르코는 은희가 어머니의 치매로 겪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으며, 노동조합으로 고통을 받는 선배가 결국에는 쓰러지는 것을 마주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진실을 피할 수는 없나.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영원히 모르고 산다면 그것이 오히려 나은 일이 아닌가.
이 소설에서는 모름에 대해 절대적으로 부정한다. 이들은 현실로 나오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은 절대 약이 될 수 없으며, 우리는 현실을 알아내기 위해 단단한 벽 사이를 뚫고 지나다녀야 한다. 이것은 다음 챕터, "우주늪"에서 알 수 있다.
의조는 의주와 가위바위보 하나로 운명이 갈린 쌍둥이 자매다. '정체불명','미입력자','불법 거주자','비시민','침입자' 로 불리는 의조는 의주에게 애정이 서린 증오의 감정을 갖는다. 의주가 없었다면 자신이 의주처럼 친구를 만들고, 밖에 나서는 생활을 할 수 있었기에. 그리고 그런 의조를 보며 의주 또한 죄책감과 애정이 서린 감정의 폭포 속에서 헤엄치고 있음을 의조는 알고 있다. 이름처럼 한끝 차이로 갈린 쌍둥이를 그 누가 구원할 수 있는가.
의조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벽 사이,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 회색 공간인 배관 통로로 다니다 '미입력자'가 된 아이를 죽이는 치유키를 보게 된다. 치유키는 의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는 미입력자를 죽이는 일을 하고 있는, 의조와는 정반대에 대립하는 인물이다. 그 두 인물이 배관 통로를 사이에 두고 교류한다. 의주의 친구 치유키와 교류하며 의조는 처음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쌓아간다.
처음으로 언어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의조는 더 큰 세계로 나아가기 전, 의주에게 편지를 쓴다. 친구인 너보다 자신이 치유키에 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귀엽고 증오스러운 질투가 섞인 채. 의조는 이들이 살아가는 폐쇄적인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앍 있기에, 그만한 환상을 꿈꿀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벽에 가로막힌 운명이 아니라, 사잇길을 뚫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갈망하는 치유키는 여전히 살아 있는 의조에게 희망을 품고 있으리라. 자신과 같은 열망을 가진 사람을 거역하고 끝내 살아남은 의조를 위해 끊임없이 호흡할 거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주는 중요한 무언가를 잃은 채 성장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런 의주의 곁에서 또 다른 중요한 것을 잃은 채 성장하지 못하고 머무는 소마가 있다. 다음 챕터이자 표제작, "이끼숲" 이다.
소마는 유오를 잃은 그날부터 칩거했다. 자신의 안일함이 유오를 잃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으로 마음 놓고 슬퍼하지도 못하고 유오의 환상만을 좇는다. 어느 날 찾아온 마르코로부터 유오의 클론을 훔칠 것이라는 친구들의 계획을 듣고, 처음으로 밖으로 나선다. 드디어 유오의 클론-'그것'을 손에 넣게 된다. 친구들의 희생과 함께, 소마는 '그것'과 밖으로 나선다.
고통이 있어야만 성장을 이루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깨달아야 성장을 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 수 잇고, 깨닫기 위해서는 뼈와 살을 베어내도록 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마에게는 '그것'이라고 부르면서까지, 모든 것들을 해치고 문을 열기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간절함이 있었다. 유오에게 식물로 가득한 돔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 그것이 소마를 밖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견고하던 세계가 드디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마가 밖을 보여준 것은 실제 유오인가? 그것은 그저 '그것'으로 지칭될 뿐이고, 유오의 클론이 아닌가. 그렇다면 소마가 밖을 보여준 것은 실제 유오가 아니고, 그저 소마의 앳된 소망이었을 뿐이 아닌가. 모든 것이 헛수고였나.
소마가 '그것'을 안고도 끝까지 밖으로 나선 것에는 본인에 대한 강박도 있었으리라. 소마는 유오의 환상에 안주하며 밖으로 나가지 않을 선택을 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끝까지 유오의 죽음을 부정했다. 유오는 언제나 살아있었으며,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곱씹었으니. 그러나 다양한 방해막을 뚫고 나간 곳에는 녹색 식물로 가득한 싱그러운 돔 대신, 식물이 모두 죽어버린 회색 돔 뿐이었다. 그러나 소마는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아직 눈을 뜨고 자가호흡을 하지 않는 '그것'을 위해 죽음을 감수하고 밖으로 나간다. 결국 '그것'이 눈을 뜬 것과 작은 벌레를 본다. 작은 벌레의 움직임은 바깥에서도 생명체가 살아낼 수 있음을 의미하고, 그것은 바깥에서 호흡한다. 모두의 희생을 감내하고 무너진 세계를 탈출한 소마와 '그것'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놓지 않는다.
그들이 발을 붙이고 있던 원래의 세계는 무너졌으나 '그것'이 눈을 뜨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했다. 소마의 이기적인 욕심이 아니라 친구들의 희생을 감내하고 감수한 용기였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작고 큰 선택과 용기로 이루어져 있다. 마르코의 은희를 찾아가고 원하는, 노동조합을 지지하기 위한 사인을 해내는 용기와 선택, 의주에 대한 증오를 선택하는 용기와 선택,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이던 의주와 집, 치유키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서기 위한 용기와 선택, 밖으로 나가 '그것'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리라 행동한 용기와 선택.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연대. 그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꿈을 위해 용기와 선택을 가지고 달리는 인간이다. 설령 세계가 무너지더라도 다시금 지하에 도시를 세울 줄 아는, 견고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다.
청소년들은 작고 무모하다. 이것이 SF 아포칼립스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주인공을 꿰뚫는 이유이고,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이유다. 작고 무모한 도전이 세찬 날갯짓이 되어 무너뜨릴 세계는 과연 어떤 세계인지, 우리는 조금 더 암담한 미래를 보며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 후세대는 구세대 때문에 고통 받을 것임이 확실하고, 우리 또한 그랬기에. 조금은 무너져도 되는 세상을 구축하고 무너져도 피신한 곳에서 살아낼 수 있는 희망을 가진 서로와 함께해야 한다.
무너지고 서로를 놓지 않으며, 이끼처럼 언제 어디서든 굳건하게 살아내는 것이 현세대와 후세대가 풀어야 할 매듭이다. 나는 이제 매듭의 꼬투리를 막 쥔 참이다.
과거는 우주와 같아서 우리는 걸어 그곳에 갈 수 없고, 네가 꿈꾸는 아름다움은 만질 수 없는 별과 같아서 실체를 마주하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 순간 실망만 가득할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