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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키 Mar 16. 2023

아무튼 세상을 구하는 것은 고양이고 귀엽다.

스즈메의 문단속

스즈메, 대단해! 


의자와 여고생, 고양이가 문단속을 하러 돌아다니며 일본을 구하는 영화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호소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매니아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분명해.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이미 한국을 먹어버렸으니 발목이 뭐야, 오른쪽 다리 정도는 내어주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어. 확실한 것 하나는 킬링타임용으로는 꽤 괜찮았다는 것, 왜냐하면? 


다이진이 귀여우니까.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특정한 것만 돌아가면서 좋아해왔고 (지브리와 세일러문-특히 세일러문은 기술을 모두 외우고 다녔어) 남들처럼 다양한 작품을 접해보거나 한 감독만 죽어라 들어간 적은 없어.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스즈메를 제외하고는 너의 이름은. , 언어의 정원만 봤거든. 사실 나랑은 감성이 아주 조금 맞지 않아서 보면서도 박수를 치면서 보진 않아. 진짜 인간이 나와서 한계까지 몰리며 끝까지 망가지는 게 취향이거든, 나는. 


보고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 만약 스즈메가 다이진이 함께 다니는 의미를 알았다면 문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닫을 수 있었을까. 본 너희두 아는 것처럼 다이진은 아주 귀여운 고양이(와 닮은) 신이고 요석이야. 저세상으로부터 나오려는 미미즈를 막고 있어. 그 요석을 해방시키고 미미즈를 방출시키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안쓰러운 주인공) 스즈메이고. 이런 방해 캐릭터는 영화마다 꼭 나오기 마련인데, 또 누가 있을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나오는 퀴렐 교수도 비슷해. 실질적인 악당-메인 빌런은 아니지만 그 빌런을 도와주는 것(혹은 처럼 보이는) 위치에 있어. 우리는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해리의 적은 퀴렐인 줄로만 알다가, 마지막 반전으로 사실은 퀴렐의 터번 속에 있던 볼드모트였다는 것을 알게 돼. 다이진도 매한가지야. 우리는 다이진이 문을 열고 미미즈를 방출시키고, 스즈메와 소타를 방해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니지. 아, 소타는 방해한 게 맞긴 한가, 영화 시작하고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서 의자로 변해버렸으니까. 그런데 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다이진은 우리가 셀 수 없는 시간들을 홀로 문을 지키며 요석으로 있었잖아. 스즈메가 요석을 들고 한 말은 차갑다, 야. 그 차가운 시간들을 홀로 버티다가 스즈메의 따뜻한 손을 감각했을 때 다이진은 스즈메에게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곁에 있고 싶지 않았을까. 다시 요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소타를 요석으로 바꿔버린 거야. 잘못된 애정의 방식이지만 다이진은 어렸고 아무것도 모르는 요석이었으니까. 나, 너무 다이진을 응석받이로 만드나? 어쩔 수 없어, 다이진은 정말 어린 빌런처럼 보였고 귀여워서 내 안에서 괴리감을 일으켰거든(...). 


얘들아, 정말로 고양이가 이 세상을 지킬 구원묘이면 좋겠지만, 고양이가 이 세상을 불구덩이로 집어넣을 마귀면 어떻게 할 거야? 고양이의 얄궂은 결심 하나로 우리가 모두 죽어버리는 거야. 고양이의 잘못된 애정 하나로. 스즈메의 곁에 있고 싶다는 굳은 결심 하나로. 


(약 삼 일을 넘도록 고민했는데, 난 역시 고양이의 발톱에 할퀴어져서 죽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나왔어. 같이 화장실 모래 바닥에 쓰러져서 피 흘릴 사람을 구하고 있어 성별 나이 성 정체성 무관 아무나 연락 줘!) 


여기까지 쓰고 읽어보니까 내가 너무 고양이-다이진-고양이-다이진 하는 것 같기도 하네. 그런데 나는 정말 보자마자 이건 고양이고 다이진은 신이고 신은 귀여워, 라는 공식을 세워버렸거든. 요새 신 때문에들 난리잖아. 정말 쓰레기도 많고 뭐 우리 중에서 본인이 진짜 영험한 존재로 태어나서 손가락 까딱으로 모든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죄송하지만 그 신 분이 진짜 다이진처럼 귀여운 게 아니라면, 난 다이진이 내 신이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난 세상이 귀여운 것들로 가득하면 좋겠단 말이야. 그럼 나도 죽겠다, 아이고. 


아무튼, (스즈메와 함께...) 고양이의 숭고한 희생이 세상을 구하는 영화는 조금 더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줘. 나는 생각이 많고 정리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서 매번 살아갈 이유를 찾기 바쁜데, 당분간은 다이진이 살린 세계다(일본을 살리긴 했지만), 생각하고 살아보고 싶어. 언젠가는 다이진처럼 내 곁을 맴도는 귀여운 신이 눈앞에 실제로 나왔으면 좋겠구. 내 귀여운 신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구. 


다이진 필터를 제외하고 보면 그래도 킬링타임으로 보기에 그다지 나쁘진 않아. 나처럼 애니메이션 문외한은 그냥 저냥 다이진 귀여워-스즈메, 대단해! 만 외치면서 봤어. 스즈메랑 소타의 전우애도 다정하고 미미즈는 두렵고. 오랜만에 콜라 마시면서 극장에 있으니까 행복했어. 너희두 다이진 보러 가, 그리고 나랑 다이진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아보자. 



다이진,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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