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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키 Apr 12. 2023

상처가 물에 닿으면 쓰라리고 흐른 피는 따갑다.

워터 릴리스 

*이미 감상한 사람들이 읽는 걸 추천해. 서사 설명은 거의 없고 내 생각 위주라서. 그냥 내가 좋으면 마구 읽어도 돼! 나도 사랑해~.~


다들 아픈 걸 알면서도 뛰어든 적이 있어? 오늘은 말 그대로 러브 다이브! 꿈도 좋고 병도 좋고, 고통도 좋고, 가장 투박하면서도 흔해빠진 사랑도 좋고. 참고로 (당연하게도) 내가 말할 건 사랑이고, 사랑에 뛰어든 아주 안쓰러운 여자애의 다이빙이야. 

셀린 시아마 감독의 워터 릴리스. 플로리안을 우연히 사랑하게 된 마리가 고통을 감내하면서 성장을 거듭하는 청소년 성장 영화이고, 사랑 영화야. 굳이 나누자면 첫사랑. 영화에는 수중발레와 동성애, 잘못된 표현의 방식이 나타나. 전체적으로 대사나 씬이 붕 뜨는 지점은 거의 없지만 공백이 길고 인물들의 대사가 적은 편이라 관객을 생각하게 만들어. 나는 보면서 아주 약간, 그러나 견딜 수는 있을 만큼만 우울했는데 조용하고 긴 씬들이 너무 답답했어, 긍정적으로. 재미가 없고 지루한 건 아니야. 그냥, 그만큼 온갖 생각들이 다 드는 대화 속에서 나 혼자 바빴다는 뜻이야. 


플로리안과 안느를 비롯한 아이들은 수중 발레를 해. 모두가 몸에 붙는 수영복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하고, 물에서 몸을 움직이며 노래에 맞춰 춤을 춰. 이건 사회가 보는 여성상. 그리고 이것을 지켜보는 사회-코치는 플로리안에게 마사지 핑계를 대며 성희롱을 하고, 아무때나 문을 함부로 여는 남학생들, 자신의 성기를 무지막지하게 들이대는 프랑수아까지. 어린 여자 아이들의 시선에 폭력적인 사회를 잘 나타내는 것들이야. 이 애들을 그냥 평범한 학생으로 볼 수는 없었을까. 추악하진 않지만 외면하고 싶은 사회상이 드러날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외면해버려. 인간은 이중적이고 나는 인간이니까. 반성할게, 미안해. 

그리고 동성애. 마리와 플로리안. 마리가 안느의 경기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플로리안을 보게 되는데, 둘은 그날을 기점으로 언젠가부터 사랑하고 있어. 아니, 마리가 플로리안을 사랑하고 있어. 우리 나라에서는 동성애가 엄청난 이슈를 몰고 오는(...) 중대한 사안이지만, 영화에서는 그 누구도 그들의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아. 오히려 플로리안이 마리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하지 않지. 플로리안은 팀의 리더야, 그런데 아이들의 평이 썩 좋지는 않아. 남자들과 자고 다니고 요망하며 여우 같은 애-가 플로리안의 수식어일 정도. 그런데 마리는 플로리안을 "처음부터" 그렇게 보지 않아. 실제로도 플로리안은 요망하고 여우 같은 애도, 남자들과 자고 다니는 애도 아니지. 그냥 남자랑 몸을 맞대고 키스를 나누는 게 좋은 애야. 키스는 누구랑도 할 수 있지만 자는 건 싫은 거야. 그래서 플로리안은 마리에게 자신의 첫 상대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해, 마리는 기꺼이 행하고. 


반면, 마리의 친구 안느는 키스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그 중요한 것을 프랑수아와 하고 싶어해. 여기서 가장 포인트는, 프랑수아는 플로리안을 좋아하고 플로리안은 거절한다는 거야. 결국 키스를 하는 것은 프랑수아와 안느야. 이게 과연 성공한 사랑의 예시인 것 같아? 


갑자기 안느를 물고 늘어져서 미안, 나는 안느의 표현 방식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해. 안느는 좋아하는 프랑수아를 보기 위해 집에 찾아가 기다리고, 목걸이를 몰래 훔쳐서 남자 탈의실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건네. 몸은 컸지만 마음은 크지 않은 아이야. 그냥 자신만을 봐주기를 기다릴 뿐이야, 하염없이 표현만 하면서. 반면, 플로리안은 자신의 잘난 점 (예쁜 얼굴이라거나 자신에게 호의를 비추는 남자 아이들)을 내세우면서 이용해. 그렇다고 모든 것들을 드러내는 건 아니야. 뒤에서 마리랑 엄청 씹어대. 플로리안은 그들을 좋아하지 않고 마리도 그렇게까지 사랑하는 건 아니야. 플로리안에게 마리는 그저 단순한, 한순간의 방황 상대였을 뿐이야. 자신이 못난 남자와 키스할 때 방해해주고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지루한 시간을 함께하고, 자신을 동경하고, 처음이면 좋겠는 그런 애. 마리는 플로리안에게 험한 짓을 하지 못할 거고, 자신을 그렇게 보지도 않으니까. 난 여기서 엄청나게 슬퍼졌어. 완전히 갖고 놀다가 버려진 기분이야. 


그런데도 마리는 플로리안을 사랑해버려서 그 애의 쓰레기마저 품어버려. 먹던 사과를 먹으며 구역질이 나왔지만 참아내고, 그 애가 키스하고 다른 남자와 자는 것을 (자는 척만 한 거지만) 보고 기다리면서 울어. 울면서도 좋아해. 마리에게 사랑은 너무 아프고 안느에게 사랑은 쉬워. 플로리안에게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야. 아이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라, 나는 마리를 사랑했어. 나는 조금 아픈 사랑이 좋고, 아프게 지독한 사랑을 그려내고 싶거든. 


나는 안느의 사랑에 대해 묻고 싶어. 그리고 안느와 마리에 대해서도. 아마도 마리와 안느는 평생을 가도 똑같은 주제에 똑같이 화를 내고 똑같이 싸울 거야. 넌 너무 어리고 사랑만 찾아. 그래, 너 잘났다. 그리고 마리는 평생 자신이 외적으로도 성숙하기 바랄 거야. 실제로도 그렇게 될 거고. 외적인 서숙함을 바라는 건 필연적으로 올 것을 미리 그리는 것과도 같아. 그런데 안느는 외적인 성숙함이 있었기에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는 하지 않았으나 자기는 했어. 육체적인 관계만 원했던 프랑수아를 뚫어본 셈이야. 아마도 안느는 조금 더 기다리다가 키스를 할 거야. 영화 후반부, 마리가 안느에게 키스를 하는데 이것이 성애보다는 우정의, 그러니까 조금 더 진부한 키스지만,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키스야. 반면, 마리는 플로리안에게 마지막 키스를 당하면서도 상처를 받아. 이게 마리가 사랑을 감당하는 방식이야. 나, 정말 마리를 사랑하나 봐. 


마리의 사랑이 쓰고도 달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힘들었어. 어떤 사랑은 물과 같아서 흠뻑 젖어버려. 그리고 그것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발을 마구 움직이지만 둥둥 뜨는 것에서 멈춰. 그때 마리처럼 유연하게 행동하고, 유영한다면 언젠가는 그래, 아팠지-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랄래. 오늘부터 물 뜨고 기도해야지. 


전체적으로 되게 빈티지한 색감이야. 빛이 바랜 필름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데, 특히 물을 비출 때 매력적이야. 프랑스 특유의 사실적이고 가까운 화면이 가장 귀여워. 어린 배우들의 눈빛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가 엄청 매력적이야! 어린데도 불구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눈빛을 선사해. 


어때, 다들 마리처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유행하는 노래처럼 사랑 하나 믿고 러브 다이브! 해도 괜찮을 것 같아? 나는 다른 건 다 하겠지만 먹던 사과를 다시 먹는 건 힘들 것 같아. 비위가 엄청 약하거든. 사과를 품고만 있을래. 아니면 새 사과를 사서 줘야지, 한가득. 


음, 그래도 사랑 타령만 하진 말자. 나한테 사랑 타령은 영화만으로도 충분해. 안녕. 다음엔 또 무슨 영화 얘기를 해야 할까? 


추신. 요새는 영화를 보고 생각 정리를 못하고 있어. 세상에는 강한 영화가 많고 나는 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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