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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키 Apr 27. 2023

아름답고 강하고 섹시하고 똑똑해!

파니핑크

다들 친구로부터 엉망인 구원을 받은 적 있어? 아니, 애초에 무너진 적이 있어? 나는 아주 많고 넘치는데, 구원은 잘 모르겠어. 우리는 주로 함께 무너졌고 아직까지도 지속적으로 쭉, 건강히 무너지는 중이거든. 이제 우리는 울지 않고 조금은 약해졌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강한 척만 해. 이제 진짜 괜찮아, 정말로. 아마도.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도리스 되리 감독의 영화 파니핑크는 친구로부터 엉망인 구원을 찾는 외로운 파니핑크에 대한 영화야. 영화는 파니핑크가 결혼정보회사에 자신의 프로필을 보낼 영상을 찍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보내지 않아. 파니핑크는 진정한 사랑 : 파니핑크, 내 삶엔 네가 필요해- 를 원하기 때문이야. 


파니핑크는 보편적이지 않아. 독특한 패션과 외향에 죽음을 위해 관 짜는 모임에도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기이한 사람들이 모인 아파트에 살아가. 그리고 사랑을 기다리고 있어. 내 삶엔 네가 필요해, 라고 말해주는 사랑을. 그런 파니핑크를 찾아온 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술사 오르페오야. 오르페오는 파니핑크와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부터 파니핑크의 삶에 서서히 스며들어. 낭만적이야! 


오르페오는 파니핑크와 완전히 상반된 삶을 살아가. 흑인이고 동성애자야. 바에서 여장을 한 채 노래를 부르고 연인에게 이별을 당해. 언제나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파트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파니핑크와 함께 살기도 해. 그런데 여기서 포인트는, 오르페오가 파니핑크의 사랑을 찾는 여정에 힘을 준다는 거야. 남자의 생김새를 읊어주고 (아무래도 주술사니까) 자신이 죽을 때가 되면 그들(?)이 데리고 올 거라고 해. 그렇다면, 얘드라. 오르페오는 사기꾼일까? 

솔직히 나도 너도, 당신도 그쪽도 우리 모두 친구에게 속아 넘어간 적이 분명히 있어.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우린 친구고 나는 널 사랑하니까 우리 둘만의 귀여운 장난이야, 괜찮지? 정도. 우리가 친구를 믿는 것처럼 파니핑크랑 오르페오 또한 서로를 믿은 거야. 파니핑크는 오르페오를 믿어서 아파트 관리인에게 다가갔고 사랑을 잠시나마 채울 수 있었어. 오르페오 또한 파니핑크를 믿었기 때문에 아파트(속세)를 떠나 새 삶을 얻을 수 있었어. 얻었으리라 생각하고 얻어야만 해, 오르페오는. 물론, 현실적으로 오르페오는 그들에게 절대 끌려가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현실만 믿고 보고 살기에는 너무 짜치잖아. 재밌는 것도 아니구. 


파니핑크도 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아. 장례 체험까지 지내는 판에 무슨 현실적인 삶을 타령해? 걔네는 그냥 그거면 된 거야. 각자 추구하는 것이 명확하게 있고 그것을 믿어줄 친구 한 명만 있으면 돼. 장례식을 미리 체험하며 보편적이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자신들에게 이별을 고한 혹은 떠나버린 뭣같은 전 애인들의 사진을 먹고,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거야. 이런 사기꾼 같은 삶에서 오르페오와 파니핑크는 어쩌면, 외롭지 않았을지도 몰라. 


여기서 말하는 운명적인 사랑은 이성적인 사랑이 아니야. 그냥 함께하기를 원한 거야. 그리고 파니핑크랑 오르페오는 함께 지내. 파니핑크는 오르페오로부터 사랑을 기다리고, 엄마의 압박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함을 배웠고 오르페오도 자신의 세계를 강화시키며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자 용기를 얻었어.


내가 아픈 척을 해도 넌 날 사랑하지, 왜냐하면 우린 친구니까! 


영상미가 엄청 예뻐. 영화라서 이게 현실이 아니라서 아쉬울 정도로. 오래된 영화이기도 하지만 저화질과 영화 중간마다 추가되는 인서트가 자꾸만 내가 파니핑크가 되게 만들어. 난 주인공과 나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동안 나는 파니핑크가 되어서 너무 행복했어. 오르페오 같은 친구는 없어도 같이 무너질 친구도 있구! 나 정말 복 받은 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파니핑크의 생일이야. 오르페오가 해골옷을 입고 축하해줘. 해골이 낭만적이진 않았는데 생전 처음으로 낭만적으로 보였고 그들만의 제를 지내는 것 같기도 했어. 그들은 눈을 가진 생물은 먹지 않아. 아주 파란 섀도우를 칠하기도 해. 이렇게 사랑스럽게 지내는 친구들은 아름답고 강하고 섹시하고 똑똑해! 

얘드라, 있지. 우리 바보처럼 살진 말자. 아름답고 강하고 섹시하고 똑똑하게 살자. 나는 평생을 파니핑크처럼 살고 싶어. 설령 관을 다 짜지 못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관에 들어가지 못해도 좋을 것 같아. 그냥, 나 관을 뜯어먹으면서 세상을 영위할래. 


안녕. 우리 진짜 행복하는 거야. 파니핑크처럼, 오르페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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