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어질 결심’을 처음 보고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느낌은 그 세련된 분위기였다. 영화의 미장센, 색감, 그리고 그 주제가 어쩌면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을 닮아있으면서도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듯했다. 전형적인 박찬욱의 색감이 떠오르면서도, 그와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느껴졌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깊고 세련된, 무엇보다도 감각적인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면서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이 떠올랐다. 올드보이의 보라색, 친절한 금자씨의 버건디 레드, 아가씨의 검정색, 그리고 특히 박쥐에서의 색깔이 기억났다. 영화 속 색상 연출이 ‘박쥐’와 유사하다고 느꼈다. 색깔은 단순한 미술적 요소를 넘어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헤어질 결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색은 초록과 파랑이다. 여기에 하얀색과 붉은색이 보조적인 색으로 등장한다. 주로 캐릭터들의 의상과 배경에서 이런 색상들이 잘 드러난다. 특히 송서래가 입는 옷은 각 장면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파랑은 의심과 자유를 상징하고, 초록은 죽음을 암시하는 색으로 보인다. 서래가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취조를 받는 장면이 반복되며, 그 상황은 자신이 얽히지 않은 자유를 찾았음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초록색은 영화 곳곳에서 나타난다. 산 속 배경, 그리고 박정민이 죽는 장면에서 배경이 초록색인 점은, 초록이 죽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색임을 시사한다. 또한 서래가 할머니에게 주는 펜타닐 약물의 색이 초록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서 초록이 가진 의미와도 비슷하다.
해준이 입는 하얀색과 검정색 의상은 그의 캐릭터가 지닌 정갈하고 청결한 이미지를 상징한다. 후반부, 서래를 만난 후 해준이 입은 회색 코트는 그가 겪는 내적 변화를 나타내는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붉은색은 삶과 생명의 의지를 나타내는 색으로, 서래가 남편을 죽이는 장면에서 붉은 등산복은 생명력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영화의 구도 또한 흥미롭다. 총 6번의 죽음이 등장하며, 이는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를 통해 죽음의 의미를 이어간다. 서래의 어머니와 사철성의 어머니의 죽음은 자식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두 사람의 죽음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서래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남편의 죽음은 그녀의 자유를 구속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살해당했다. 홍산호와 서래의 죽음은 서로에게 자유를 주거나, 각인시키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중요한 점은 홍산호와 서래의 죽음이다. 두 사람은 자기 파괴를 통해 상대에게 사랑을 전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영화의 제목인 ‘헤어질 결심’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서래는 두 번의 결심을 한다. 첫 번째는 해준과 헤어지기 위해 떠나고, 두 번째는 두 번째 남편과 헤어지기 위한 결단이다. 후자는 그녀의 자유를 구속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해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서래의 옷은 파랑과 초록이 섞인 청록색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해준과 자신을 구속하는 남편 사이의 갈등을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것 같다. 이포의 안개처럼, 그녀의 삶은 정확히 보이지 않지만 그 의미는 명확하다. 영화 중반에서 해준이 서래에게 했던 "당신을 사랑한다"는 명확한 대사는 없지만, 그의 행동으로 전해진 사랑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
서래는 해준에게 사랑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자유를 찾기 위해 죽음을 맞이하려는 결단을 내린다. 이는 해준에게 "사랑한다"는 말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으로 스며들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서래가 해준이 잠든 차 안에서 그를 찍고, “굿모닝”이라고 인사하는 장면이다. 그 이후, 해준이 경찰서에서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하자 수완이 당황하며 “왜 아침인사냐”고 묻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그 장면은 영화의 유머와 세련된 분위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해준은 죽음을 갈망하고, 서래는 살고 싶어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해준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죽고 싶지만 죽지 못하는 심리상태에서 비롯된 것이고, 서래가 해준에게 굿모닝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에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헤어질 결심은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죽음으로써 상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써 상대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려는 점에서 그 차이가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박찬욱 감독의 미장센은, 신비롭고도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그 세련된 이야기의 힘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