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과 여명 그 사이에서 얻는 깨달음
떠오르는 태양, 저물어가는 태양.
누군가에게는 그 두 모습이 시간대만 다른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토닥임과 위로 또는 두려움과 설렘 등으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자벨 드 가네(Isabelle de Ganay, b.1960)의 <루앙의 새벽 L'aube à Rouen>은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는 여명이었을, 또는 석양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여명과 석양 사이, ‘그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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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가네는 인상파의 명맥을 잇고 있는 루앙학파의 생존 작가이다.
그녀는 루앙의 새벽을 바라보며 어떠한 마음으로 붓을 들었을까.
루앙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그 도시는 단순히 고향의 의미를 넘어서,
스스로의 존재성을 자각하는 장소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루앙의 새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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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그 경계의 시간
새벽은 언제나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지만, 그 하늘과 공기, 온도 등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새벽은 밤과 아침이라는 경계에서 언제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관점에서 드 가네의 새벽은 단순히 다가오는 아침의 전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나갈 시간을 포착하여 붙잡고 있다.
그녀가 표현한 새벽은 단순한 풍경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는 감각의 현장, 시간 그 자체로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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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의 순간은 언제의 시간일까?
드 가네의 새벽은 ‘그 순간’이라는 시간성을 포착하지만 동시에 어느 날의 새벽을 환기시키기도 하고, 앞으로 보게 될 새벽을 상상하게 하기도 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과거-현재-미래의 공존.
우리는 그 다양한 시간대를 인지하는 순간 스스로의 현존을 깨닫고는 한다.
하이데거는 “시간 안에서만 드러나는 현존재(Dasein)”를 언급한 적 있다.
그의 말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 드 가네의 작품에서 현존재는 어둠을 밝히는 태양일까 아니면 새벽을 바라보는 개개인의 존재일까?
떠오르는 태양 또한 어둠 속에서는 존재를 드러내지 않지만, 새벽의 태양은 개인의 존재를 인식시킨다. 그녀의 작품은 스스로가 하나의 존재로서 존재함을 깨닫는 과정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며, 우리에게 찰나 속에서의 영원을 마주하게 한다.
그렇게 그녀의 작품은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존재는 시간과 본질적으로 연관됨“을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감상자를 사유의 길로 안내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빛과 어두움 그리고 감정의 교차가 만나는 그 경계의 순간을 담고 있으며, 존재의 여명을 그려낸 회화적 사유이자, 감각을 통해 드러나는 존재의 현상학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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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에서 여명과 석양 모두 흔하게 작품의 주제이다.
그러나 묘사된 하늘과 해 그리고 빛의 모습을 토대로 그 시간대를 짐작하기란 어렵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작품을 볼 때에 작품의 제목을 먼저 보아야 할까, 아니면 작품을 먼저 감상해야 할까.
나는 작품을 먼저 감상한 뒤에 제목을 보는 편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을 선호하건,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을 접한 그 순간의 감정이 마음속 깊은 곳을 자극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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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과 석양, 그 사이에서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셨나요?
-하나의 전시가,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질문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그 순간의 생각을 담아, 조용히 풀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