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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위에서 마주하는 당신의 시간

부재를 통해 현존을 느끼다

by La plage


피에르 위그, Singing in the Rain, 1996, SFMOMA. 2023년 필자 촬영.

하얀 단상 위에 탭댄스 슈즈처럼 보이는 금빛의 구두 한 켤레가 놓여있다.

그 주변에는 회색과 검은빛의 발자취가 남겨져있고, 어긋나게 놓인 그 구두는 마치 방금까지도 움직였던 듯한 흔적을 보여준다.


그 흔적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느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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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프랑스 현대미술 작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b.1962)가 1996년에 제작한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g in the Rain>이다.


당시, 이 작품은 독립적인 전시실에 있기보다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 사이에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입구에 가장 근접한 위치에 덩그러니 놓여 감상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유난히 시선을 앗아가던 이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나도 모르게 단상 위의 흔적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금빛 구두를 인지하는 게 늦어졌다.


그래서일까, 그 구두가 더욱 쓸쓸해 보였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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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의도적으로 영화의 제목을 차용하여 기억과 과거가 재구성되는 방식과 그 과거의 기억이 다시 경험되는 방식에 대해 논하고자 했다.


결국 작품의 완성은 제목이라는 말에 의도적으로 제목을 ‘무제’로 짓는 작가들이 있듯이, 위그는 영화의 제목을 직접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흰색의 단상, 금빛의 구두, 그리고 그 흔적과 더불어 제목까지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감상자가 영화와 연상 지을 수 있도록 의도하여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연상 기법을 통해서 위그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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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한 켤레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과 누군가 그것을 신고 움직인 듯한 흔적은 오히려 부재하는 누군가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가정에 확신을 주는 것만 같다.

흔적으로 인한 역동성과 정체성의 공존은 생과 사의 공존으로서 누군가의 부재는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생의 흔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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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의 현존(presence of absence)

역설적인 듯하면서도 역설적이지 않은 개념.

우리는 언제나 일상에서 부재를 통해 현존을 느끼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떠남이 그러할 것이며, 무언가의 잃어버림 또한 그럴 것이다.

사소하게는 잃어버린 일기장을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


흔적은 결여의 시각화일까, 아니면 존재의 존재성에 대한 형상화일까?

위그의 작품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현존과 현존성.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의 작품은 어느 특정 시간 속에서 멈춰있는 듯하지만 오히려 관람객에게 뮤지컬 영화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연극성을 가지게 되는 듯하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이어저 사라진 존재의 공백이 새로운 형태의 현존으로 재구성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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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현존의 증거인 발자취와 구두에서 당신은 무엇을 느끼셨나요?

각자가 느낀 감정과 시간은 다를 겁니다.

만약 그 흔적 속에서 쓸쓸함을 느꼈다면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상을 한 것일 테고,

그 흔적 속에서 돌아올 누군가에 대한 기대감과 기다림의 마음이 떠올랐다면 미래를 그린 거겠죠. 또는 멈춰있는 찰나를 함께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당신의 시간은 어디를 향해 흘러가는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하나의 전시가,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질문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그 순간의 생각을 담아, 조용히 풀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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