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ary of ART
카를 도센데이(Karl Dauthendey)가 남긴 <카를 도센데이와 피앙세(Karl Dauthendey with His Fiancée)>(1857) 사진에 대해서 철학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자신의 에세이 사진의 작은 역사(Little History of Photography, 1931 tr. by John Troost, 2005)에서 “... 사진과 같이 정밀한 기술은 사람의 손으로 작업된 그림과는 다르게 그 대상에게 정말 마법과도 같은 것을 선물할 수 있다(.. the most precise technology can give its products a magical value, such as a painted picture can never again have for us)”라고 서술하였다. 이 문장은 사진에 대한 벤야민의 관점을 직/간접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초상화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도 적용된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초상화를 그린다고 생각해 보자. 화가는 대상에게 가만히 있기를 요구할 것이다. 여기에는 표정도 포함될 것이다. 예전의 초상화는 일종의 기록과도 같은 역할을 했지만 하나의 추억으로 기억되기에는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분위기, 기분 등이 과연 작품에 온전히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상황을 순간 포착하는 사진이야말로 어찌 보면 그림에 비해서는 진실된 기록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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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포착’
정말 기술만이 가능한 일이 아닌가, 아무리 손이 빠른 화가라도 순간과 같은 찰나를 담아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사진이 예술일까?
사진이 미술사에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는 어느덧 오래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한 논쟁 또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글쎄, 사진을 예술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사진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과거 그림이 기록물, 유희거리 등과 같은 다양한 기능을 했듯이, 사진 또한 다양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예술로 바라볼 수 있는 사진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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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랏빛 은하수 사진을 접한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어디에 가면 이런 것을 보는 거지?’였다. 나는 실제로 이런 것을 본 적이 있던가.
한국의 도심에 살고 있는 나는 사진을 통해 이런 것을 접하고는 한다. 그러면 이거는 정보를 전달하는 일종의 기록물의 역할을 하는 사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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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야누스(Jeremy Janus)의 <밀키 실루엣(Milky Silhouettes)>(2020)은 '예술(Art)'로 평가받는다. 이 사진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관점에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웅장하고도 멋진, 이색적이면서도 기억에 남을 가치가 있는 자연의 모습을 담은 사진에 불과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을까..?
나는 사실 이 사진을 하나의 예술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입장에 대한 생각이 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
자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야말로 ‘예술’의 콘셉트 바로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자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그 자체의 동일한 모습을 2번 이상 발견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회화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되는 회화로는 ‘바로 그 순간’을 담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흥미롭고도 아름다운 예술적인 면모를 품고 있는 자연의 모습은 회화로 표현되기 어렵다. 실제로 풍경화가의 대가 중 한 명인 존 컨스타블(John Constable)은 이러한 생각에 구름 형태, 움직임 등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구름의 움직임이나 변화를 꾸준히 관찰하며 나름대로의 연구를 진행하며 다양한 스케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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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사진이 예술일까?
지금까지 열거한 사진만의 특징은 그저 사진의 기능적인 장점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비디오 아트가 제작되는 시대에 도달한 지금 현재에도 사진이 예술인가에 대한 논쟁은 지속된다.
아마 앞으로도 기술이 발달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예술 장르가 탄생하게 되어도 기술을 통한 예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사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인 ‘기술로 제작된 것이 예술인가?’‘사진이 예술인가’와 같은 것들이 쫓아다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진이 예술임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다양하게 제작되었지만, 앞으로도 사진은 그 질문을 하나의 과제로 품고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언젠가의 미래에는 사진이 만인에게 예술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당장 회화의 하나인 추상표현주의의 작품들에도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네모, 세모, 줄 등으로만 표현된 저게 뭐지? 저런 것도 예술이라고 해야 하나?”
이처럼 역사 깊은 회화에서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하나의 회화 장르 또한 끊임없이 ‘예술의 정의’에 대해 질문을 받는데, 그 명성에 의해 회의감을 품는 사람들에게도 어찌 되었든 ‘예술’에 속해지는 추세로 보인다.
이것이 앞으로 사진 예술이 걷게 될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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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진이라는 예술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예술로의 사진은 반복될 수 없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며, 그 순간적인 단편에 아우라를 부여하는 것을 통해 지나칠 수 있는 순간 또는 지나쳐버리는 순간을 마법적으로 만드는 기능을 하는 유일한 장르가 아닐까 싶다.
2021년에 소논문으로 다루었던 주제를 다시 꺼내어, 제 생각과 마음을 더해 새롭게 풀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