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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일파워 임승희 Jul 26. 2020

엄마의 옷장

아홉 번째 이야기.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편 엄마.

학원 강의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학생이 었던 A는 학원을 수료하고 취업을 의뢰해 왔다. 성격이 동글동글 하고 사교성이 뛰어나서 윗사람과도 살갑게 잘 지내는 학생이었다.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트로 잘 적응할 만한 친구라는 판단이 되었다. 그때 배우 강동ㅇ을 진행하는 B실장이 연락이 와서 A를 추천하였다.

A는 배우 강동ㅇ과 영화 '늑대의 ㅇㅇ’ 현장을 진행한다고 목소리가 들떠서 전화가 왔다. 무척이나 좋은가 보다.

3개월 뒤 그녀가 케이크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함박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그녀가 흥분하면서 핸드폰 하나를 내밀었다.


"선생님, 선생님 이거 동원오빠가 현장에서 고생했다고 선물로 사줬어요. "


그녀의 목소리에는 강동ㅇ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아마도 현장에서 그녀 특유의 유쾌함으로 스텝들과도 잘 지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날로 일을 관두었다고 하였다. 열정 페이로는 일을 더 이상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인가 엄마랑 동네 미용실에 갔었다. 엄마는 그날 파마를 하면서 나는 커트를 했다. 엄마의 머리를 하던 후덕한 배를 가진 목소리가 컬컬했던 미용사는 닭집 아줌마의 험담을 하고 있었다. 우리 집 옆의 닭집은 나의 친구의 집이기도 한데, 닭집아줌마는 닭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미모의 소유자이며 날씬하기까지 해서 무얼 입어도 눈에 띄었다. 엄마는 동조하지 않고 대답만 무심하게 하였다. 미용사는 더 이상 이야기의 진전이 없자 조금 짜증이 난 듯 보였다.

나의 커트 차례가 되었다. 커트보를 씌우고 물 스프레이를 커다란 원을 그리듯 뿌렸다. 잘 관리가 안되어 엉퀸 머리카락들은 일자 빗에 자꾸 걸리기 시작했다. 미용사의 손길이 조금씩 거칠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으나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어머 머리가 곱슬 머린 갑네. 아주 꼬불꼬불 난리가 아니네. 그냥 확 잘라 불지 그라요?"


아까까지 조금한 소리로 네네만 하던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지금 애한테 뭐라는 거예요? 애가 무슨 곱슬머리야? 쭉쭉 뻗은 머린데 어디다 대고 곱슬머리 확 자른다고 지랄이야 여편네가!!  남 욕이나 지껄일 때부터 알았는데 왜 애한테 곱슬이라니 뭐라는 거야!!"


엄마는 무척이나 흥분해 있었고, 목소리에는 화가 많이 나서 힘이 들어가 있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A에게 연락이 왔다. 가로수길에서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하얀색 퍼프소매 원피스를 입고 플렛슈즈를 신은 그녀가 그 특유의 웃음을 지으면 다가왔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선생님 저 결혼해요."


그녀는 회사를 다녔고 사내에서 자신과 대화가 잘 통한다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고 하였다. 꼭 나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하였다. 몹시 들뜬 그녀는 자기는 현모양처가 꿈이라서 도시락도 싸주고 주말엔 같이 캠핑도 가고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면서 알콩달콩 살고 싶다고 야무지게 이야기하였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두 번째 카테고리 안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커 보였다. 결혼은 나와는 다른 환경의 사람과 같이 앞을 보며 걸어가야 하는 길인데 그녀의 가는 길에 박수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엄마의 옷장을 열어본다.

둥근 카라의 흰색 블라우스가 걸려있다.

엄마도 결혼을 할 때 꿈을 꾸었을 것이다. 마당이 있는 양옥집에 아이들이 북적대고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나는 집을 꿈꾸었을 것이다. 결혼하고 현실은 꿈과는 많이 달라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길 수가 없다. 아니 그 시대엔 누구나 그랬다.

나는 반곱슬 머리이다. 사실 미용사가 빈정거리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을 텐데, 엄마는 남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에는 무척이나 화를 냈다.


엄마의 둥근 카라 흰색 블라우스를 입어본다.

마치 나는 소녀 신부가 된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엄마의 옷은 참 따뜻하다.






수종사를 다녀왔다고 했다. A의 집은 파주인데 남양주까지 엄마를 모시고 왔다고 했다.

연락이 없던 그녀가 인스타를 타고 안부인사를 전한다. 코로나 19로 세상이 정지된 지금 그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인스타를 들여다본다. 인스타 안에는 직접 만든 음식 사진과 강아지 사진이 즐비했다.

시간을 내서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의 한 복판이어서 대략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물어본다.


"선생님 저 이혼했어요. 지금은 엄마네 집으로 들어왔어요."


나는 화가 벌꺽 났다. 결혼해보니 성격이 안 맞아 계속해서 싸우게 되고, 시부모와도 갈등이 심했던 모양이다. A도 참고 살아보려고 무던히 노력을 하였다고 한다. 곁에 있던 엄마가 A에게 참지 말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했다.




엄마의 행복은 자식의 웃음이다. 아침 식탁을 차려본다.

딸을 위한 말랑 복숭아 한 개와 플레인 요플레, 콘프레이크를 준비하고 아들을 위해 먹기 좋게 자른 수박과 초코 시리얼과 딸기잼 바른 토스트 하나를 준비한다. 성격만큼이나 좋아하는 것도 다른 아이들.

테라스 문을 활짝 열어 아침 바람을 맞아본다. 뭐가 그리 좋은지 아이들은 하하하 밝게 웃는다.


엄마는 나의 웃음소리를 좋아했을까?





파주에 카페를 오픈하였다고 연락이 왔다. 유칼립투스 한 다발 사 안고 A의 카페를 찾아갔다. A는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트를 관두고 찾아왔을 때의 함박웃음으로 나를 맞아준다. 엄마의 안쓰러운 시선으로 나는 그녀를 쳐다본다. 세상 밝은 그녀의 눈망울이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촉촉이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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