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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일파워 임승희 Jul 26. 2020

엄마의 옷장

일곱번째 이야기. 나도 위로해줄 친구가 필요하다.

강연을 하고 싶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승원의 강연을 보면서 어쩌면 강연의 기승전결이 저렇게 잘 맞으며, 시선처리 하나까지 깔끔한지. 그의 강연을 보면서 나도 강연을 꿈꾸었다.

어쩌면 김승원이라는 사람을 사석에서 아는 사람이라 더 가깝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대학원 동문이다.

5년 전인가 가로수길에서 김승원 오빠를 만났다. 내 인생의 멘토링을 받기 위해서.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에게 강연을 하려면 콘텐츠를 찾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책을 쓰라고 하였다.

나에겐 너무 높은 벽 같은 존재로 김승원 오빠는 다가왔었다.




책을 쓰기로 결심을 했다.

혼자서 쓰는 것은 너무 멀게 돌아가는 길인 것 같아서 아카데미에 신청을 했다. 아카데미는 6명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기 다른 분야의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다양한 콘텐츠로 일주일에 하루 저녁시간을 토론으로 공유했다. 드디어 첫 동기가 운이 좋게도 아카데미 주최인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를 받았다.

과거의 김치녀였다는 그녀는 수수한 스타일이었다. 17년 차 초등학교 교사로 제직 중이며, 아동리더쉽을 콘텐츠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글체는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의 특수성으로 작가로 변신한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할 사람이 없었다는 그녀는 자주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제가 얘기할 때가 없는데 너무 오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진짜 이야기를 너무 잘 들어주세요"

나는 어느 순간 처음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 생기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 그리고 창대할 미래에 대한 확언을 듣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 술술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작은 출판사하고  그리 유쾌하지 못한 출판 계약을 겨우 한 나인데, 나는 마치 점쟁이가 된 양 그녀를 상담해주고 안심시켜주고 심지어 비방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과연 내가 그럴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들었던 순간이다.


동네를 내 집처럼 뛰놀다 배가 고파야 집에 들어오는 어린 시절의 나는 아무런 제지 없이 나만의 놀이를 즐겼다. 아니 즐긴 게 아니라 어쩌면 방치를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의사결정은 나 스스로 했다. 해가 지고 있는데 더 놀지 집으로 들어갈지. 엄마는 나를 찾아 나오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들어올 때 되면 들어오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아무런 제지 없이 컸다. 그래서 생각의 폭이 넓은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늘 바쁘고 그리고 그 자리에 있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나를 찾으러 나오시지는 않았지만 항상 따뜻한 밥상을 차리고 기다리고 계셨다.

엄마의 밥상은 늘 정갈하고 맛있었다.

하얀색 들꽃 자수가 들어간 엄마의 상아색 블라우스를 꺼내본다.

아직도 코끝을 스치는 매운 고추 냄새와 기름 냄새가 나는 것 만 같다.

나는 엄마의 블라우스를 입어본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남자 짝꿍이 연필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나는 들은 척도 안 했다. 남자 짝꿍은 나에게 심하게 화를 내며 연필 하나 빌려주지도 않는 나쁜 아이라고 큰소리로 얘기했다. 나는 몸을 더 작게 웅크릴 뿐 빌려주지 않았다.

나는 외롭거나 무서울 때면 연필 끝을 입으로 질근질근 씹었다. 씹고 나면 연필의 나무향이 입안 가득 남았다. 그러면 안정이 찾아왔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30대 초반의 중산층의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분이셨다.

머리는 항상 단발에 빗질을 언제 했는지 모르게 떡져있고 늘어진 티셔츠에 빛바랜 바지를 입고 다니던 그저 평범한 나에게 시를 참 잘 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해 나는 24개의 상장을 받았다. 그림과 글 짓지 심지어 포스터까지 모든 상장을 섭렵했었다.

나는 그 이후 친구가 많아졌다. 그리고 거울을 보기 시작했고 스스로 나를 꾸미기 시작했다.

나는 얇게 많은 그룹의 친구들이 생겼으며, 친구들은 나를 제일 친한 친구라고 칭하기 시작하였다




첫 책을 출간하는 작가는 걱정도 많았다. 편집이 다 끝난 책은 인쇄소로 넘어가고 이제는 더 이상 그녀의 손을 떠났다고 했다. 자기는 일개미 공무원이라 책을 내도 누구 하나 줄 사람도 없다고 했다.

요즘 출판사들이 어렵다 보니 보통은 작가에서 일부 책을 스스로 구입하게 하는 관행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계약서상 그런 문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초보 작가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점을 볼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초조하고 불안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점을 보라고 하였다.

점을 보고 온 그녀는 첫 책은 3000권을 나가는데 베스트셀러는 아니고 내년에 내는 두 번째 책에서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출판사는 본인이 원하는 대형 출판사가 될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확신이라고는 없고 계속 불안하여 자꾸 같은 질문을 계속한다.

"나는 팔 곳도 없는데 책을 사라면 어떡하죠?"

계약서에도 없고 사라 한 것도 아니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계속 반복되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지쳐갔다.



브레이크 없이 달려왔다. 나는 친구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친구가 없다.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걱정하는 친구는 없었다. 다혈질에 무조건 질주본능을 타고나서 나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많은데 친구들의 눈엔 그저 운이 너무 좋은 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불안함을 커버하기 위해 점을 보기 시작했다. 나를 모르는 점성술가들이 나의 고민을 들어줬다.

나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창구는 오직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친구들로부터 혼자 바쁜 사람이 되었고 만나면 안부와 깊이 없는 허공에 떠도는 이야기만 했었다. 나의 고민을 들어줄 친구는 없었다.



나는 오늘도 그녀의 출판 마케팅 미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아니 상담해줘야 한다.

그녀는 나와의 상담을 하고 나면 마음이 개운하고 뭔가 힘이 쏟는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의 상담을 위해 오늘도 스스로 만든 계획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나도 고민이 많은데, 사람들은 내가 고민 없이 사는 사람처럼 보이나 보다.

복식호흡을 해본다.

"후~~~~~후우"

마음에 풍파가 가라앉는 것 같다.

드라마를 보면서 또로록 눈물이 흐른다. 나 스스로가 흠칫 놀란다. 코끝이 시큰해지고 심장으로부터 울화가 스몰 스몰 올라오고 있다.

나도 고민이 많은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나는 내 애기를 들어줄 친구가 필요하다.



엄마의 옷장 속의 옷들을 휘~~ 둘러본다.

하나같이 여성스러운 퍼프와 리본과 자수가 들어간 옷들이 유독 많다.

엄마도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을 텐데.

내 기억 속에 엄마도 친구는 없었다. 엄마는 그렇게 또 혼자 속으로 울면서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하얀색 자수가 들어간 엄마의 상아색 블라우스에 눈물이 묻어나도록 펑펑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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