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를 먹고 있지만 살을 발라 먹을 수 있는 토막이 몇 개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슬퍼' 아귀찜을 먹을 때의 내 마음이다.
아귀찜에 들어가는 아구의 통통한 살과 대창을 먼저 골라먹고, 두 번째는 매운 콩나물을 듬뿍 집어 먹는다.
마지막으로 밥을 세 숟가락 정도 비벼먹고 마무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귀찜에 들어가는 미더덕이나 아구의 물컹거리는 껍질, 물렁뼈는 손대지 않는다.
그래서 아귀찜을 좋아하지만 먹으면서도 아구가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거나 '너를 안고 있지만 네가 그리워', ''너와 손잡고 있지만 밤이 되어 헤어질 것이 두려워'같은 연인사이에서의 로맨틱한 말을 나는 정확하게 이해한다.
타인의 평판을 신경 쓰는 나로서는 여러 사람과 아귀찜을 먹을 때 신경 쓸 점이 많다. 아귀찜 앞에서 식탐으로 폭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교양 있는 현대인으로서 사회생활에서 보여줘야 할 품위가 있으니까...
아귀찜이 나오면 흥분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써야 하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아구를 한 점씩 집어가실 때까지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가장자리의 콩나물을 조금씩 집어먹으면서 대화한다. 역시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코기가 많은 토막들을 눈으로 스캔하여 둔다.
그리고 내가 집어가도 자연스러울 정도의 순서가 되면 남아있는 중에서 가장 살코기가 많은 아구토막을 골라 가져올 수 있다. 이렇게 순서가 한두 번 돌고 나면 더 이상 젓가락으로 발라 먹을 수 있는 아구 토막은 없다. 보통 마지막으로 남는 꼬리와 날개 지느러미 쪽 토막은 손으로 들고 입으로 살코기와 껍질을 뜯어가면서 먹어야 한다.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나로서는 결국 포기하고 양념과 콩나물에 비빈 밥만 먹게 된다. 모두가 손대기를 꺼려해서 남아있는 꼬리와 날개지느러미 토막은 볼 때마다 슬프다.
언젠가 한번 선배들 두 명과 만나기로하고 근처에 있던 유명한 아귀찜집에 간 적이 있다. 작은 크기를 시켜서 먹으면 되겠다는 선배의 말에 슬쩍 큰사이즈를 추천했다. 엄청난 크기의 접시와 함께 아구찜이 왔다. 양도 적고, 밥과 함께 먹는 선배들은 어느정도 먹더니 배부르다고... 남겨서 아깝다고 했다. 선배들은 식사를 끝내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두명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눈앞에 아구 토막과 콩나물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망설이다가 '아까운데...' 하면서 살뜰하게 살을 발라먹고 콩나물도 양껏 먹었다. 두 손가락과 입가를 닦아대며 열심히 먹는 나를 보던 선배들은 대화를 하면서도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 송새미가 아귀찜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다음에 또 먹으러 오자.' 하는 말에 멋쩍게 웃었지만 부끄러웠다.
결혼초 아구찜이 맛있다는 집이 있으면 신랑이 기억해두었다가 둘이 아귀찜을 먹으러 가곤 했다. 아귀찜에 흥분하는 나를 위해 신랑이 모든 아구 살을 양보해주고 본인은 아구 껍질과 미더덕, 콩나물만 먹었다. 그래서 이젠 둘이 아귀찜을 먹으러 가지 않는다. 그리고 아귀찜 먹는 나를 싫어한다. 얄밉다고...
이런 나를 위해 친정집에 가면 친정엄마는 시장에서 제일 큰 생물 아구를 사 오셔서 아귀찜을 해주신다. 실컷 먹고 남으면 큰 덩어리의 살코기만 발라내어 양념과 함께 반찬통에 담아 주신다. 그래서 친정엄마가 아귀찜 해주시는 날을 신랑은 싫어한다. 다른 요리가 없다고...
내가 좋아하는 아귀찜 맛집이 있다. 지역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맛집이다.
가게는 넓고 갈 때마다 친절하시다. 맛은 물론이고, 아구와 대창의 양에 아쉬운 적이 없었다.
이 집의 아귀탕도 좋아한다. 맑은 아귀탕에는 아구 간을 듬뿍듬뿍 넣어주신다. 함께 먹는 사람들이 아구 간을 못 먹는다고 하면 조용히 속으로 환호한다. 아구간이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절대 권하지 않는다.
술과 음식은 싫다는 사람에게 권하는 게 아니다.
코로나 시대를 견디면서 내 몸은 배달어플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아구맛집은 배달어플에 없다.
그래서 시내의 좁고 밀리고, 주차하기도 힘든 이 맛집을 포기했다.
배달어플에서 높은 평점을 받은 집을 찾아 몇 개월 만에 아귀찜을 시켰다. 배달어플에서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는 아귀찜 집이다. 맛은 좋았으나 역시 아구살만 발라먹는 내게는 아쉽다. '대'를 시켜서 신랑은 미더덕과 콩나물을 집어먹고 한 번씩 집어간 날개 토막에서도 큰 살코기가 나오면 내 접시로 놓아주었다. 분명 몇 조각 안 먹은 것 같은데 더이상 아구가 없다. (물론 콩나물은 정말 많았고 맛있었다. 다음날 퇴근해서 양념으로 볶음밥을 해서 신랑과 나의 저녁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냉장고에 넣어둔 포장용기를 열었는데 놀랍게도 콩나물이 통통한 상태였다.) 역시 아구가 아쉬운 마음에 후회했다. 몇 개월 전에도 같은 이유로 후회한 것을 나중에 기억했다. 매번 먹고 나서 아쉬워하는 나를 보며 신랑은 항상 한심해한다.
역시 포장용기와 반찬용기와 비닐랩을 수북이 남겼다. 포장용기를 닦고 씻었지만 빨간 양념의 색이 지워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다시 약간의 죄책감을 담았다.
금요일, 주말과 다음 한 주간의 먹을거리를 사러 간 마트에서 망설이다가 생물 아구를 샀다.
오른쪽 제일 아래에 있는 것이 '생물아구 두마리'
수산코너 앞에서 망설이다가 아귀찜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고, 아귀탕을 검색해보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