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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Jun 09. 2021

얼음, 열음, 여름

책상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서 물을 먹으려는 순간이었다.


"얼음, 얼음이 필요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마트에 갔다. 집에서 얼음을 얼려도 되지만 나에게는 지금 당장 얼어버린 물이 필요했고, 나아가서는 마늘과 생선 냄새가 첨가된 얼음을 음료를 먹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서 얼음을 얼리면 사방팔방 투명한 얼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마트의 냉장고에는 플라스틱 컵 안에 있는 얼음밖에 없었다. 내게 필요한 건 각얼음이었다. 밖부터 안까지 투명한 그 각얼음이 필요했다. 다른 곳에 계시다가 카운터에 돌아오신 사장님께 살짝 여쭈었다.


"사장님, 얼음 있나요?"

"컵에 들은 거요?"

"아뇨, 그 얼려진 거."

"아, 이만한 거요?"


얼음을 달라면서 얼려진 걸 달라고 하다니 정말 멍청한 질문이었다. 사장님의 '이만한 거'가 혹시 아이스박스에 넣는 커다란 얼음을 말씀하시는 걸까 봐, 얼른 조각난 거라고 말씀드리고 기다렸다. 개떡같이 말했지만 사장님은 찰떡같이 나의 주문을 알아들으셨다. 3kg의 무게의 3,000원짜리 각얼음이 카운터에 놓여졌다.


날씨가 더웠기에 녹기 전에 얼른 계산을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얼음을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었다. 냉동실 비우기를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냉동실을 가득 채운 뒤, 얼음을 사러 나가기 전 컵에 우려 놓은 보리차 티백을 얼른 빼고 얼음을 담았다. 따뜻한 물에 순식간에 얼음이 녹았다. 걱정 없다. 더 넣으면 되니까! 


물을 마시 전부터 찬 공기가 입 안으로 들어온다. 목구멍을 타고, 뱃속으로 찬물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캬아, 얼음물을 먹는 계절이 돌아왔다. 얼음이 그 포문을 열었다.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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