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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Jun 08. 2021

사랑과 전쟁, 혹은 러브 앤 전쟁

집에 TV가 왜 필요하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사랑과 전쟁'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잘 요약하고 잘 정리된 것들이 있지만 그래도 전체를 다 보는 맛을 포기할 수는 없다.


동생과 같이 살게 되면서 동생이 내게 제일 많이 한 말은 "또 봐?"다. 사랑과 전쟁을 두고 한 말이다. 그랬던 동생은 이제 대사를 3초만 들어도 어떤 편인지 알게 되는 경지에 올랐다. 시즌1과 시즌2로 나눌 수 있는데, 시즌2는 하나도 안 빼놓고 다 본 듯하다. 시즌1은 요즘 나오고 있어서 새롭게 보는 것들도 있다.

지금은 주연급인 배우들, 아직도 재연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분들, 고등학교 선배까지. 재미요소가 여기저기 숨어 있다. 여러 곳에서 방송되고 있는 재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익숙하다고 느껴지면 그건 사랑과 전쟁이 각색한 이야기였다. 현실은 더 심각했다는 작가들의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동생은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는 원래도 밖에 잘 나가지 않는 사람이라서 동생을 데리고 나갈 명분도 없었거니와 그럴 생각도 딱히 있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과 전쟁 배우들이 '러브 앤 전쟁'으로 연극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생을 데리고 나갈 명분이 생겼다. 우선은 던져보았다. 하지만 미끼가 부실했는지 걸려들지 않았다. 막 강요하진 않았다. 내 것만 예약했다고 살짝 이야기해 줬다. 그리고 연극의 전 날, 버스를 예매하면서 한 번 더 물었다. 동생은 살짝 의사를 내비쳤고, 나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 나가자!


오래간만에 대학로에 갔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시간이 꽤 남아서 산책을 했다. 대학로에는 귀여운 고양이가 많았다. 뭘 보냐는 듯 째려봤지만 그 자리에 딱 앉아서 요래 저래 포즈를 잡아주는 고양이에게는 카메라를 들이밀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원래 유명한 아이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 사람들을 남겨두고 뒤돌아서면서 깔깔거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연극은 정말 신났다. 맨 앞에서 배우님들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신났고, 사랑과 전쟁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마음에도 신났다. 배우님들의 에너지가 구석구석 느껴졌다. 방송에서 소리 지르는 장면이면 스피커를 곧잘 터뜨리는 최영완 배우님의 발성은 무대에서도 도드라졌다. 

연극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났지만 정말 좋았던 것은 배우님들에게 사인을 받을 수 있었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혹시 사인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집에서부터 종이를 가져오기도 했고, 번질까 봐 문구점에서 엽서와 매직을 사기도 했다. 결국 배우님들 얼굴이 나와 있는 엽서를 구매해서 엽서와 종이는 쓰지 않았지만 매직은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사인은 모두 받았지만 이재욱 배우님과 사진을 찍지 못해서 아쉬워하며 돌아가고 있었는데 밖에 계신 것을 발견하였다. 죄송함을 무릅쓰고 혹시 사진을 같이 찍어될지 여쭈어봤다. 옆에 계시던 (동생에게 매형이 되어주신)김덕현 배우님이 맨 앞에 있던 관객이라고 이야기해 주셔서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진짜 최고야! 이것이야 말로 성공한 덕후가 아닐까?


우리가 '고급스러운 누나'라고 부르는 장가현 배우님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맨날 TV에서 보던 사람들을 가까이 무대에서 본 것에 둘 다 들떴다. 그리고 동생은 그 뒤로 밖에 나가고 여행도 가며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추가로 장점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사랑과 전쟁 본다고 투덜거리지 않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는 그냥 드라마일 뿐이고 누구에게는 그냥 이야기일 뿐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혼자 집에 있을 때 친구가 되어주고 인생을 알려준 드라마였고, 동생에게는 평생 볼 TV보다 더 많이 본 프로그램이며 밖으로 나오게 해 준 핑계가 돼준 연극이었다.


동생은 배우님들의 싸인은 집안 대대로 가보로 남겨야 한다면서 우스갯소리를 했다. 아니, 난 진심이다. 

길이길이 가보로 남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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