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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Jun 06. 2021

자격증 취득

우리 학과를 나오면 필수로 따는 자격증은 '산림기사'다. 졸업하면 당연히 딴다고 생각했고, 따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시험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꼭 어떤 지점에서 뭔가 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왜 나무를 잘 키워서 잘라서 팔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무를 잘 키우는 이유가 환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산주 입장으로 놓고 보면 이해가 되었지만 그것이 최선인 것처럼 설명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배우는 학문에는 공존이 없었다.


공존을 배우기 위해 다른 과의 수업을 들었고, 그곳에도 내가 생각하는 공존은 없었다. 결국 배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었다.


산업기사를 볼 수 있는 시기가 되었고, 학년이 올라가 기사를 볼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아무리 해도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60점 커트라인에 58점 59점을 자주 맞았고, 60점이 넘은 시험에는 한 과목에서 40점이 안 나와 과락을 당하기도 했다.

어찌저찌 필기를 통과하고 실기를 봐야 하지만 1년 넘게 보지 않았다. 필기를 통과하면 2년 동안만 그 효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실기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시험은 접수했다. 되면 취득하는 것이고, 안되면 산림기사에서 손을 떼기로 마음먹었다. 실기 시험은 어려 종류로 나오는데, 단가를 계산하는 것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나마 양심상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영림계획서를 작성하는 시험이 나왔다. 50년이 넘은 나무들이 있는 숲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 계획하라고 했다. 보존을 하겠다고 작성했다. 사실은 외워서 그리면 되는 거였다. 선배들이, 선배들의 그 선배들이 그런 것처럼 똑같이 나무를 자르고 어린 나무를 심고, 풀을 깎아내는 계획을 세우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울창한 숲을 남겨두고 싶었다. 결과는 보나 마나 탈락이었다. 그리고 산림기사를 깔끔하게 접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도전한 것이 '자연생태복원기사'다. 이름은 딱이었지만 실제로 공부해보니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도 산림기사보다는 훨씬 나았다. 산림기사와 비슷한 과목으로 이뤄져 있었는데도 필기는 금방 합격했다. 마음가짐의 차이였을까, 내가 바뀐 것이었을까?

하지만 필기는 달랐다. 도면을 손으로 그리는 것은 고등학생 때 해본 이후로 한 적이 없었다. 온라인으로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학원을 등록했다. 한 달의 주말을 꼬박 학원에 바쳤다. 서울에서 숙소를 잡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면을 그렸다. 도면을 그리는 것 재미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재미있는 줄 알았다면 조경학과 수업을 청강이라도 해 볼 걸이라며 후회했다. 몸은 피곤했고, 도면에 쓰는 글씨체는 힘들었지만 과정이 정말 재밌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그려보고 나는 평면도보다 단면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필기시험을 쳤다. 다른 것은 걱정되는 것 없이 잘 작성했다. 하지만 부표에 띄우는 세 가지의 수생식물 중 한 가지를 '미나리'로 쓰고 나오는 바람에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미나리가 시험 점수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필기시험은 한 번에 통과했다.


그렇게 기사 자격증 보유자가 되었다. 이 녀석이 가리왕산 복원에 쓰였으면 엄청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 한 번도 쓰인 적은 없고, 있다고 월급이 오르지도 않는 자격증이었다. 그래도 그냥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뿌듯했다.




<학원 다니면서 그렸던 도면들>

이번 주, 환경스페셜 '곰 내려온다'에 하부형 생태통로가 나왔다. 배운 도면과 너무 흡사해서 그려놓았던 도면을 꺼내보았다. 이런 한치의 오차도 없는 교과서 적인 사람들이라니. 다만 3차 소비자에 담비랑 나란히 반달가슴곰을 써야 한다는 것이 달랐다.


시험에 이거랑 조류관찰지가 나왔던 것 같다

상부 생태통로는 이래저래 말이 많다. 이걸 그리면서 가장 별로 였던 것은 땅이 굴곡 없이 너무 판판하다는 것이었고, 생태통로라는 이름을 쓰면서 사람의 산책로를 만든 것이었다. 특히 사람의 산책로와 고라니의 길에 낮은 마운딩을 하는 것을 끝이 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만든다면 그 겁 많은 고라니는 생태통로를 지날 때마다 사람과 눈을 마주쳐야 할 것이고, 결국 그 길을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

분명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동물들의 길을 빼앗아서 대체로 만들어주는 통로임에도 만드는 만드는 김에 산책로를 만드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원래 있지도 않던 산책길을 만들어주는 것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이게 시험에 나왔다면 나는 인간의 산책로를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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