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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Jun 05. 2021

멀티태스킹과 기인열전

며칠 전, 실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동생은 소리를 질렀다.


"뭐야아? 그게 무슨 짓이야!"


뭐 잘못한 거 있나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아니, 네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게 말이 돼?"라고 했다. 눈치채고 있지 못했다. 다리는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고,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거치대에는 핸드폰 게임이 켜져 있어서 간간히 눌러주고 있었고, 티비에 나오는 '사랑과 전쟁'은 이미 본 것이라서 듣고 있었다.

엄청 일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생에게는 기인열전 같아 보였다고 했다. 되돌아보면 게임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말을 걸면 백이면 구십 캐릭터가 사망했다. 그게 재미있어서 게임하고 있을 때는 말을 걸기도 했었다.

막 웃음이 났다. 내 웃음이 퍼져서 둘 다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내가 네 가지를 한꺼번에 하고 있었던 것을 전혀 눈치채고 있지 못했던 것도 웃겼고, 그런 나를 기인 보듯 봤던 동생도 웃겼다. 막 웃고 있는 와중에 동생이 갑자기 정색을 했다. 


"와, 나랑 얘기하면서 네 가지 다 하고 있네. 그럼 다섯 가지를 한꺼번에 해? 책 내용이 기억나긴 해?"

"으하하하하, 내가 생각해도 나 미쳤나 봐. 하하하하하하하"

"혹시 활자 중독 아니야? 읽기만 하는 거지? 내용은 기억 나?"


"이건 사람들한테 물어봐야 돼. 누나처럼 하는 사람 있는지. 진짜로 물어봐야 돼."


동생은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 뒤 컴퓨터를 하러 돌아갔다.

그날은 30분만 타기로 했던 자전거를 70분이나 탔다. 멀티태스킹의 장점이자 단점은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다.




이걸 하면서 저것도 하고, 저걸 하면서 이것도 하는 것에 익숙하다.

어릴 때부터 동생과 놀아주면서 책을 읽었고, 학생이 되어서도 티비를 틀어놓고 보면서 공부를 했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고 혼나긴 했지만. 한꺼번에 두 가지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들어가서 연구실에서 일하면서도 한쪽에는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을 틀어놓고 서류 작업을 했다. 같은 연구실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내용은 기억나냐고 물었을 때, 그 질문이 이해되지 않았다. 기억이 안 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상한 거라고 느끼진 않았다. '그런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겠지 뭐.'였다.


일을 할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뭔가의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다른 일이 들어오면 그 일도 동시에 했다. 다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우선을 둬서 그 일을 끝내고 다른 일을 했다. 여유가 있을 때는 혹은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을 때는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화면을 보지 못하더라도 소리를 들어가면서 일을 했다. 그러고 보면 아무 소리도 없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은 싫었다. 나는 멀티태스킹에 능한 것이 아니라 그냥 너무 조용한 것이 싫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이랬든 저랬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능력 아닌 능력이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으니 부릴 수 있을 때 계속해봐야겠다. 그리고 기록해 봐야겠다. 한꺼번에 어떤 걸 섞어서 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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