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을 읽고
요즘이야 혼밥이다, 혼술이다 크게 이상하지 않을 때지만 십몇 년 전에는 아주아주 이상한 취급을 당했다.
그때의 나는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내고 '혼자 하기'를 즐기고 있었다. 뭐든 혼자 하는 것을 혼자 하기 시리즈라고 명명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첫 번째로 한 것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명동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명동에서 하는 프리허그를 하고 계시는 여성분을 꼭 안아줬고, 비 오는 날 남이섬에 다녀왔다.
혼자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기도 했다. 사실 혼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일은 원래도 어색하지 않던 일이라 리스트에는 있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도 시도해 본 것의 최고 난이도는 혼자서 고기뷔페에 간 것이었다. 이 도전은 친구들 사이에서 꽤 오래 회자되었다.
식당의 입구에 들어서서 "몇 명이세요."라는 물음에 "혼자요."라고 답하자 주인아저씨는 재차 혼자 온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요즘은 혼자 가면 안 받아주는 고기뷔페들이 꽤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는 않았다. 흔하지 않은 일이라 그랬을지 모르겠다. 아직 저녁시간이 막 시작할 시간이라 그랬는지 한산했다.
자리에 앉아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 시점까지는 괜찮았다. 내 옆의 옆의 커플이 자꾸 수군거리기는 했지만 괜찮았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급 소주가 땡기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시킨 소주. 그 소주와 한 통의 전화로부터 가시방석은 시작되었다.
친구의 전화였다. 뭐하냐고 진짜 뷔페에 혼자 갔냐길래, 고기도 먹고 있고 술도 먹고 있다면서 (남자 친구 군대 가고, 방학 중인데)내가 같이 먹을 사람이 누가 있냐며, 그러니까 혼자 먹지 라는 말에 커플 귓속말은 끝이 났다. 이제는 대놓고 "뭐야 저 여자, 차였나 봐."라고 말했다. 아뇨.. 아닌데요...
더불어 주인아저씨와 아줌마는 대놓고 구경을 했다. 물론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여자 혼자인 테이블을 계속 쳐다봤다. 에라이 모르겠다, 이렇게 오해를 받은 김에 차인 여자 컨셉으로 우울하게 고기를 먹기로 했다. 삼겹살에 소주라니 환상의 궁합이었다. 심지어 그때의 소주는 화학 냄새도 안 나는 맛있는 시기였는데, 나는 그 소주 한 병을 다 비우지 못하고 나왔다. 그곳에서 밥을 더 먹다가는 소주고 고기고 다 세상 구경시켜줄 것 같았다. 혼자서 고기뷔페는 여러 가지 의미로 많이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당을 나온 뒤, '혼자 하는 게 뭐 어때?'라는 생각이 조금은 잘못된 것인가 아주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냥 혼자 밥을 먹었을 뿐이었다.
작가님의 친구들이 이야기했듯 혼자서 뭔가를 하는 것에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있다는 것은 겪어본 사람들은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뷔페가 아니라 일반 식당에 가도 남자 혼자 들어가면 '혼자'라고 말했을 때, 반문을 하지 않지만 여자 '혼자'라고 말했을 때는 "혼자요?"라는 반문을 받기 일쑤다. 참 많이도 받아봤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없다고 단정하는 것에는 어떻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맞을까? 사실 정말 그런 차별이 있는지 없는지는 식당에서 밥 먹으며 조금만 관찰해도 알 일이었다. 해보지 않았을 뿐이지.
책의 시작은 유쾌했고, 마무리는 현실적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현실적이었을지 모른다. 배추가 절여져 김치가 되었으나, 김치로 불리지 못하게 된 것부터가 말이다.
맥주를 마신다고 혼나지 않을 어른이 되었다. 그렇다고 즐기지 않지만 그래도 맛있는 거 먹으면 생각나는 술이다. 무슨 매력인지 참, 아무튼 이놈의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