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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Jun 03. 2021

코알라의 역사

'아무튼, 술'을 읽고

대체 김혼비 작가님의 이름을 어디서 들었던 것일까? 나는 작가의 이름에 끌려서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고 핑계를 대 보지만 '아무튼, 술'이라니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제목에서 오는 임팩트를 무시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술을 즐기지도 않으면서 술이 들어간 제목에 꽂히다니 뭐가 잘못되어도 대단히 잘못되었다. 작은 사이즈의 책이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읽어보려 했지만 좁은 양쪽 여백에 투덜거려가며 다 읽지 못했고, 결국 날을 잡아 맘먹고 읽었다. 그의 술의 역사를 내 읽기의 역사에 담으려고.




그렇게 읽고 나니 나의 술의 기억 아니 꽐라의 기억이 되살아 났다. 이 이야기는 나의 단편적인 기억들과 증언들로 구성되었다.


대학 들어와서 처음 술을 입에 대본 터라 생각보다 깨끗했던 간은 술을 꽤나 받아줬다. 그래서 한 번도 필름이 끊긴 적이 없었다. 숙취도 잘 겪지 않았다. 동기들과 동아리 친구들과 마시는 술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바야흐로 대학교 2학년, 학부에서 학과로 바뀌고 '여학생 간담회'가 열렸다. 학과 특성상 여학생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는데, 이름도 입에 붙지 않는 여학생 간담회라니 어안이 벙벙했지만 참석하라니 참석했다.


동기 중에 학과 활동을 별로 하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랑 제일 친하던 동기와 학과가 나뉘었고, 그렇다 보니 그나마 나랑 교류가 가장 많은 편이었다. 학과 사람들을 잘 모르던 그 친구는 선배인지 동기인지 후배인지 알 길이 없었고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배들에게 지목당한 상황이었다. 과 행사에 거의 처음 참여하는 것이니 더욱 그랬다. 도울 수 있는 안전하게 집에 돌려보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지하의 어느 술자리로 들어가니 핸드폰을 모두 가방에 넣어서 한쪽에 두라고 했다. 가방을 가져오지 않은 친구의 핸드폰은 나의 가방으로 들어갔다. 자리에는 2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여학생들이 고루 섞여 있었고, 안주도 배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앞에는 소주잔이 아닌 맥주잔이 놓여 있었다. 맥주를 먹는 줄 알았다. 맥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의 쏘야는 달궈진 판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거 한 입에 맥주 한 잔이면 정말 맛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착각은 자유라지 우리 테이블에는 소주만 있었다.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4학년이 3학년에게, 4학년이 2학년에게, 3학년에 2학년에게, 2학년들끼리만. 다행히 같은 테이블의 선배들이 조금 배려해줘서 다른 테이블보다는 적게 마신 편이었지만 그래도 이미 글라스 잔으로 소주를 세 잔 먹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안주는 장식용이었다는 것이다. 그 장식용을 4학년만 조금 먹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조교님은 학과 선배였고, 여학생 간담회에 참여했다. 맨 앞에 의자만 딱 하나 가져다 두시고 앉아 있는 모습은 꼭 독재자 같았다. 그리고 하는 행동 역시 그랬다. 4학년부터 줄을 쭉 세워서 글라스 잔에 소주를 따르기 시작하셨다. 학년이 내려갈수록 글라스 잔의 수위는 높아져갔다. 2학년이었던 우리 잔은 위험 수위를 넘을랑 말랑 했다.

내 앞의 그 친구의 차례가 되었다. "니가 걔니?"라는 말과 함께 잔 가득 소주가 들어부어졌다. '아 정말 뭣 됐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 친구는 이미 테이블에서도 많이 먹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친구는 원샷에 성공했고, 꾹 참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나도 무사통과했다. 문제는 내 뒤의 동기. 한 1센티 정도 술을 남겨서 다 먹은 것처럼 바닥에 뿌렸는데 딱 들켰고, 괘씸죄로 꽉 채운 한 잔 더 마시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조교는 그걸 보고 어이없어하기만 했다.


나는 견디는 것 같았지만 그때부터 정신이 살짝살짝 나가고 있었다.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이 친구를 챙겨야 했다는 일념 하나였다. 예상대로 친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잠이 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어떻게 흐른지도 모르고 여학생 간담회는 끝이 났다. 밖으로 나오니 남자 선배들이 있었다. '배달용'이었던 것이었다. 다들 이렇게 꽐라가 될 것을 알고 있었고, 데려다 줄 사람들을 밖에 배치해놨던 것이다. 세상 이렇게 치밀한 계획의 술자리라니 소름이 돋았다. 진짜 대단들 하시다 정말.

하나둘씩 챙김을 당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친구의 집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그랬다. 사촌언니와 같이 산다는 것만 알고 있었기에 나는 내가 정신없는 와중에(진짜 기억이 끊겼다 돌아왔다 했다) 친구의 핸드폰을 꺼내서 친구의 사촌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그것도 저장된 이름을 몰라서 한참 물은 다음에) 친구를 데리러 오라고 이야기했다. 한 15분 지났나 사촌언니는 남자 친구와 친구를 데리러 왔고, 나는 친구의 짐과 짐이 된 친구를 그들에게 넘겨줬다. 그리고 나는 정신줄을 점점 놓기 시작했다.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한 나의 정신과 육체는 나를 돌볼 기운은 남겨두지 않았던 것이다.


저 멀리(하지만 5미터 정도의 거리) 4학년 선배들이 맥주집에 가겠다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느릿느릿 옆으로 가서 함께 가겠다고 했다. 이대로 기숙사에 가면 갸라도스마냥 입에서 소주를 내뿜을 것이 뻔했다. 뭔가 속을 달래고 조금은 술을 깨고 가야만 했다.


"야! 얘 취했어, 데려다줘."

"맞아요, 저 취했어요..."

"아냐, 걔 아까 전화하고 하는 거 보니까 멀쩡 하드만."


이 대화를 끝으로 나의 기억이 사라졌다. 취했다고 주장하는 쪽과 안 취했다고 주장하는 쪽 모두 나를 챙기지 않았고, 나는 모두가 흩어진 그 술집 입구에 덩그러니 남았던 것이다. 어떻게 이동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이 잠깐 돌아왔을 때는 아이스크림집 앞 (지금은 없어진)테라스에 앉아서 다시 썸 타던 구남친과 통화 중이었다. 아마 버림받은 뒤 구남친과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테라스에 앉아서 소주들을 밖으로 한 번 내보내고 뭐라뭐라 전화통화를 계속 했다. 전화기 너머로 "너 어디야.", "주변에 누구 없어?"라는 소리를 듣자 나를 챙겨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뭔가 서러웠다. 눈물이 한 방울 나올랑 말랑 하는 순간 들렸다.


"너, 왜 여기 있어?"


다른 여학생을 데려다주고 집에 가던 선배가 나를 발견한 것이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바꿔달라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고, 나는 핸드폰을 건넸다. 둘이 뭐라고 통화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나는 부축을 당해볼 수 있었다. 아... 이제 기숙사 가는가 보구나.


학교 안으로 들어가서 광장 가까이에 가서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선배는 무슨 일이 날까 나를 얼른 화장실에 넣었고, 나는 거기서 또 갸라도스가 되었고 앉아서 잠깐 잠이 들었다.

조금 이따가 다른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걔 취한 거였어?", "이렇게 됐는데 왜 아무도 몰랐어." 같은 얘기가 들렸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잠에서 깼고, 나갔다. 광장부터 기숙사가 생각보다 멀었기에 차가 있는 선배가 기숙사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 선배의 차에는 이미 코알라가 되어 잠이 들어있는 다른 사람도 있었다.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목구멍에서 용이 꿈틀댔다. 입구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소주들이 아우성을 쳤다. 나는 슬그머니 창문을 열었다. 


"우웨에에에에에엑"


이라고 표현했지만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에서 소주를 분출했다. 테이블의 탐스러운 쏘야를 먹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세상 어느 불순물도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액체였다. 운전을 하는 선배의 한숨소리를 어렴풋이 들은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기숙사에 들어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술자리를 일찍 파한 덕에 잠은 꽤 잤지만 숙취는 어마어마했다. 다음날 자선공연이 있던 터라 빨리 속을 달래야 했고, 이것저것 다 안 되었지만 밀크쉐이크맛 빠삐코 덕분에 그나마 괜찮아졌다. 그래도 트럼펫에서 술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같은 세미나였던 차주인인 선배가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화장실에 들어간 내가 나오지 않아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은 되는데 들어가지는 못하는 상황이었고, 다행히 몇 번 부르니 멀쩡하게 나와서 안 취한 건가 싶었다는 것과 차에는 이물질이 묻지 않아 물로만 청소했다는 것이다.

차 안에다가 안 한 게 어디냐며 그럴 수도 있지 라고 했다. 그 와중에 창문을 열고 우롸롸롸 했던 나의 판단력을 대단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억들의 조각들을 듣는 것은 창피하기 그지없었다. 백 년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선배들을 만나고 난 뒤의 이야기였다. 내 기억의 공백 약 30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안 다치고, 무슨 일이 없었던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어디서 사고는 안 쳤겠지...


다음부터는 취했으면 취했다고 해야지. 아니, 했는데? 그래, 다음부터는 정신줄 대충 부여잡고 취한 티를 좀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휴, 바보. 술을 덜 먹겠다고 했어야지! 싶지만 그 여학생 간담회는 내 의지가 아니었으니 그런 다짐은 소용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격 상 그 다짐은 성립되지 못했다. 다만 정신줄을 집에 가서 놓은 정신력이 생겼다. 그건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겠다는 일종의 오기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맥주파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소주를 안 먹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여담 1. 독재자 같았던 그 조교는 다음날 학과장님께 불려 가서 혼났다고 알려졌다.

여담 2. 우리 학번이 학생회가 되었을 때, 여학생 간담회는 간단히 밥을 먹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다음 해에 다시 술자리로 부활되었다고 한다.

여담 3. 차주인 선배와 공동으로 졸업논문을 썼고, 졸업이 늦어지던 선배에게 나는 은혜 갚은 까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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