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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로 Jan 15. 2022

아빠와 전화

아빠는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유능한 사람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빠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그렇게 알고 살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 옛날에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밥을 먹였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는 딸을 예뻐하는 둘째 아들을 못 마땅해했지만 말이다. 같은 나이의 친구들에 비해 어릴 적 사진이 많은 것은 아마 그 당시의 내가 예쁨을 받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서 싸우는 일도 많고 서먹서먹해져 갔다. 7살이나 차이나는 남동생이 생기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빠는 편애하지 않았지만. 더구나 아빠 닮아서 무뚝뚝한 딸이었던 나였기에 더 멀어졌다. 그래도 아빠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결혼은 아빠 같은 사람이랑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사건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였다. 학교의 어떤 무리들이 나를 싫어했다.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한 소문을 낸다던지 문자로 욕을 보낸다던지 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힘들기보다는 화가 났다. 그 당시에는 발신자의 번호를 바꿔서 보낼 수 있었고, 그 번호조차 욕이었다. 누군지 짐작은 했지만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할 듯해서 아빠에게 핸드폰 대리점에 같이 가 달라고 부탁했다. 핸드폰 명의가 아빠였기 때문이다.

누군지 번호를 알아냈고, 상황도 알게 된 아빠는 그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그 상황을 내켜하지 않는 것은 아빠에겐 중요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전화기 너머에서 미안하다는 말과 죄송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아빠가 그들에게 물었다.


"OO가 학교에서 정말 그러니?"


아니라는 대답을 들은 아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아빠에게 마음의 문을 반쯤, 아니 그 이상 닫았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나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없으면 나를 괴롭힌 사람에게 저런 질문을 했을까 하는 실망감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물 밀듯 밀려왔다.

그렇게 데면데면해졌다.


먼 곳으로 대학을 가고 엄마와는 매일 통화했지만 아빠와는 연례행사처럼 전화했다. 아빠한테 해도 엄마한테 바꿔주기 일쑤였다. 사실 전화하면서 가장 많이 한 대화는 날씨였다. 거기 날씨 어떠니, 여기 날씨 어떻습니다. 그것뿐이었다. 이건 직장인이 되어서도 그랬다.


재작년, 부모님과 농사를 짓던 동생이 잠시 집을 나왔다(라고 쓰고 가출했다라고 읽는다). 몇 개월을 아빠와 매일 전화를 했다. 아빠의 마음, 동생의 마음, 엄마의 엄마, 그리고 나의 생각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내가 벽을 가지고 있는지 더 속 깊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던 듯싶다.


지금은 둘 사이를 회복시킨 뒤라 그리 자주 전화를 하진 않는다. 그런데 아빠가 변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자신이 변해야 동생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로는 하셨지만 행동이 변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변했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돌아오는 날이 되자 '벌써 가냐'라고 묻고 '길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가고 도착해서 전화하라'라고 가는 길에 전화가 왔다. 도착해서 전화하라는 소리를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운전하던 동생도 전화기를 들고 있던 나도 깜짝 놀랐다.


그리고 얼마 전, 도로에서 동생이 쓰고 있는 농장 차를 본 것 같다면서 집에 몰래 내려왔냐고 전화를 주셨다. 최근에 서프라이즈로 내려간 적은 있지만 아니어서 아니라고 했더니, 세상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고 싶어서 그랬나?"


순간 내가 들은 말이 맞나, 보이스피싱은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그런가 보다고 하하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아빠가 변했다. 일하고 있는 동생에게 전화해서 아빠가 이런 얘기 했다고 전해줬다. 동생이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일이야 대체.


우리가 이제 곧 고향으로 내려간다. 고향의, 우리가 다니다가 폐교된 학교에 북카페도 만들고 이런저런 일들을 벌여서 마을을 북적거리게 만들 예정이다. 아빠는 우리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설레는 모양이다. 그 무뚝뚝한 사람이 감추지 못할 정도니 말이다.


무뚝뚝했던 아빠가 점점 귀여워지고 있다. 아빠가 부드러울 때 애교 좀 더 부리라는 동생의 말을 실행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도 이제는 아빠의 전화가 기대된다. 또 무슨 얘기를 하시려나...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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