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려준 밥이 먹고 싶은 날

6,500원의 위로

by 라라감성


월요일

갑자기 귀가 많이 먹먹해진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양쪽 다 잘 안 들릴 정도로 먹먹하다. 당황스럽다. 느낌이 이상하여 9시부터 일찍 잠들었다. 이 시간에 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프면 안 된다.



화요일

눈을 떴다. 아직도 귀가 먹먹하다. 그래도 아주 안 들리는 것은 아니니 다행이다. 천천히 움직이고 말도 더 천천히 차분하게 하자. 짜증은 금물이다. 아침 등교 준비를 하는 딸이 어느새 내 뒤에 와있다. 깜짝 놀랐다. 귀가 잘 안 들리니 인기척이 안 느껴진다. 아이 하교 후 놀이터에서 놀고 집에 돌아오는데 바닥이 3D로 올라온다. 몸이 휘청거린다. 이 느낌은 대학교 일 학년 때 소주를 처음 마시고 바닥이 올라와 중심을 잡을 수 없던 그때 그 느낌이다. 그때 이후로 처음 느껴본 느낌이다. 두렵다. 찾아보니 이석증 초기 증상이다. 나는 나를 안고 토닥이며 소리를 내서 나에게 말해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라라 야 괜찮아 좋아질 거야 괜찮다. 괜찮다."


리라는 아는지 모르는지 즐거운 목소리로 따라 한다.


"엄마 괜찮다. 괜찮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 엄마 괜찮아. 엄마는 리라 엄마니까 괜찮아! 괜찮다! 괜찮다!"


아프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엄마는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다. (물론 아빠도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다) 엄마가 아프면 집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아이 저녁을 겨우 먹이고 설거지를 쌓아두었다. 두통이 왔다. 오늘도 9시가 좀 지나서 일찍 잠을 청한다. 아프면 안 된다.



수요일

어젯밤에 못한 설거지에 오늘 아침 설거지까지 그리고 컵은 또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많이 쌓여있는지... 하지만 어지러워서 서있기가 좀 어렵다. 몸이 안 좋은 관계로 오늘은 리라가 혼자서 등교를 했다. 미안하고 고맙다. 휴식이 필요하다. 오전에 병원을 갔다 오려 했으나 못 갔다. 설거지도 한가득이고 월 화 청소를 못했더니 빨래며 구석구석 먼지 하며 청소 거리가 한가득이다. 청소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오랜만에 커피 한 잔을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아있다. 오늘 오전에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은 몸을 만들어야 한다. 요즘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 에세이 강좌를 듣고 있다. 너무 소중한 시간이다. 총 5회 차 수업이다. 나에겐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다. 빠질 수 없다. 꼭 갈 거다. 창문 틈으로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쪼인다. 광합성을 하는 느낌이 든다. 커피로 수혈을 받으며 책을 본다. "네 컵은 네가 씻어"라는 에세이에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어느새 책을 다 읽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다.


이제 일어나자 어서 청소를 하자. 리라를 데리러 갈 학교로 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하교 후 무사히 에세이 강좌를 다녀온 후 리라 저녁을 먹이고 참을 청한다.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한 신랑이 모처럼 아이를 재워주겠다며 몸도 안 좋은데 일찍 잠자리에 들어라고 한다. 고마웠다. 그래서 오늘도 9시가 좀 지나서 잠을 청한다. 아프면 안 된다.



목요일

눈을 떴다. 조금 괜찮아진 듯했는데 여전히 귀가 먹먹하다. 오래 두면 안 될 것 같다. 병원을 가자. 오늘은 리라와 같이 등교를 했다. 며칠 엄마랑 못 갔으니 오늘은 리라와 더 즐겁게 가자 생각을 한다.


"리리야 우리 같이 노래 부르면서 갈까?" 물어보니


"펑퍼벙 퍼벙 퍼버벙 뿅뾰뵹 뾰뿅 뾰뵹뿅 아기 봉오리가 옥수수 기둥처럼 삐죽삐죽 솟아나더니 펑퍼벙펑 밤새 달님이 맛있게 튀겨 팝콘을 해 놓았나 봐요~ 하얗고 부드런 빛깔로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 풍기며.."


먼저 <벚꽃 팝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어서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세요> <아름다운 세상>을 같이 부르며 가다 보니 어느덧 학교 앞이다. 학교 앞에서 나머지 노래를 다 부르고 등교를 한다. 그리고 나는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내 병원에 도착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처음이다.


"어디가 아픈가요?"


"그제 귀가 먹먹하고 땅이 3D로 올라오는 느낌이 들어 균형을 못 잡아 휘청거렸는데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버틸 만해서 병원에 안 오려고 했는데 혹시나 싶어서 왔습니다."


"두통은 없나요?"


"어젯밤부터 두통도 오기 시작했어요"


"크게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나요? 메니에르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면역력 저하로 세반고리관에 이상이 생기면 나타나는 증상이에요"


내시 경으로 양 귓속을 진찰한다. 오른쪽을 지나 왼쪽 귀를 진찰하기 위해 내시경을 넣는데 나도 모르게 "악!"소리가 났다.


"중이염도 있네요"


"중이염이요? 물에 들어간 적도 없는데요?"


"물에 들어간 적이 없어도 발생해요"


"많이 심하지 않지요?"


의사가 갑자기 아주 어이없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는 말한다.


" 꼭 그런 걸 물어보는 환자가 있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심해요!"


의사는 짜증 섞인 어투로 버럭 한다.


나는 의사의 말과 행동에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의사도 피곤한가 보구나 아침부터 나 같은 환자를 만나서 꽤나 답답한가 보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죄송합니다. 그럴만한 일이 전혀 없어서요..."


"체력이 떨어지면 전제적으로 문제가 생깁니다. 버틸만하다가 그러는 거예요. 감기나 축농증 증상이 있었을 텐데 버티다가 지나가고 심해져서 중이염이 된 거예요. 그리고 이 메니에르 병도 버티다가 체력 떨어지면 계속 재발합니다. 링거액 맞고 중이염 약 처방해 줄 테니 몇 번 더 나오세요"


다시 생각해보니 최근에 목이 부어서 도라지차를 마시며 괜찮아져서 넘어가긴 했다. 난 이렇게 오늘 링거를 맞게 되었다. 일단 중이염 때문에 항생제 주사를 맞고 아미노산과 비타민 수액 링거를 맞는단다.

"주사약이 다 들어가려면 1:30분가량 걸릴 거예요. 불 꺼드릴까요?"


간호사가 주사를 놓고 나가면서 물어본다.


"아니요"


링거액을 맞으며 핸드폰으로 또 브런치에 올릴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직 구독자는 얼마 안 되지만 내가 글을 처음 쓰게 만들어준 <커피는 위로다>라는 스토리는 꼭 무슨 일이 있어라고 목요일엔 매주 연재해야지라고 나와에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원래 시간도 8:00시로 정해 두었는데 몸이 갑자기 이렇게 되어서 시간까지는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일주일간 틈틈이 적으며 준비하긴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복병이 찾아올지 몰랐다.


그런데 문득, 아파서 주사까지 맞는데 더 아프면 신랑에게 면목이 없으니 일단 어서 아픈 것부터 추스르자는 생각에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그동안 수면량이 많이 부족했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 나는 예민해서 쉽게 잠들기 못하는 체질이다. 불이 켜지고 벌써 바늘이 빠진다. 어느새 1:30 이 훌쩍 지나갔다. 간호사는 30분 후에 떼세요. 하며 반창고를 붙여준다.


IMG_20190427_090141_875.jpg


의사는 퉁명스러웠던 것이 미안했던 것일까? 링거를 맞고 나온 내게 무심한듯하나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던진다.


"좀 어때요?"


"똑같아요. 귀 먹먹한 정도도"


"쉬세요! 그리고 중이염 치료해야 하니 토요일 나와야 합니다."

"네"


60대 정도로 보이는 의사의 툴툴거리는 말투가 오늘은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갔다. 이곳 약사님과는 안면이 있어 서 조금 친하다. 작년 8월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으로 약사님과 상의하며 철분 약과 보충제 등을 처방받으며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때도 결국을 체력 저하 수면 부족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고 잘 자니까 좋아졌다. 그러나 몸이 다시 괜찮아지니 또 잠을 쪼금씩 적게 자기 시작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수면 시간이 평균 3~4시간 정도였는데 지금은 늦어도 두세 시에는 자거니 5~6시간은 됐고 새벽 5시에 잠든 건 딱 한 번 뿐이었는데 몸이 너무하다. 내 몸에게 서운함이 들었다. 하기야 늦게 자도 7시에 일어나고 낮잠은 자지 않으니 잠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이십 대엔 며칠 꼬박 새워도 끄떡없었는데. 이십 대 시절 나이 이야기하는 어른들 보면 '나이는 무슨 핑계겠지' 생각했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나는 지금 비로소 체험하고야 실감한다. 지금도 좋아하는 일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꼬박 밤을 새우는데 이렇게 뒷북으로 후폭풍이 몰아쳐온다. 열정이 몸을 지배하다가 몸이 정신에게 시위를 시작해버리면 방법이 없다.


"약사님 안녕하세요. 또 두통이 시작되나 봐요. 괜찮아지는가 싶었는데..."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나 봐요. 잘 먹고 체력을 키우세요."


"전 영양소도 잘 맞춰먹고 운동도 하는데... 문제라면 수면 부족이고. 일이라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게 다인데 그게 스트레스일까요? 좋아서 하는데도요?"


"좋아서 하는 일도 스트레스가 돼요. 신경을 많이 쓰면"


"아, 체력이 열정을 따라오지 못하니 슬프네요"


"그래도 젊잖아요"


"그러니까요. 젊은데 몸이 이러니... 휴..."


"나이 들면 더 힘들어요..."


순간 이 말이 머리는 쿵 치는 느낌이었다. 나이 들면 더 힘들다는 말이 이제는 현실로 다가온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은 미처 몰랐다.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이 체험으로 실감되고 있다.


"약은 3번 식후 30분에 드세요"


"네... 약을 먹어야 하는군요..."


약국에 약을 사러 왔으니 약을 먹어야 하는 게 당연한데도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하다. 그럼 세 끼를 꼬박꼬박 6시간 간격으로 먹어줘야 한다는 것이 참 부담스럽다.


약국을 나서며 시간을 확인하니 11시 20분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약을 먹어야겠다. 아, 그런데 문득 집에 가서 밥을 먹기 싫어졌다. 오늘은 누가 차려준 밥을 먹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처음이다. 그렇다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내가 차려먹는 것보다 더 부담스럽다.


평소 아까워서 혼자는 외식을 하지 않는 나지만 오늘은 할 거다. 집 앞에 <홍샘>이라는 편안하고 깔끔한 칼국수 집이 있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니 밥이 차려진다. 예쁘게!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의 부담도 없이 일어나면 된다. 좋다. 뭔가 위로받은 느낌이 들었다. 6,500원을 지불하고! 행복하다.





P.S 신랑에게 톡을 보냈다. 의사가 레미에르 증후군병이라고 했다고. 신랑이 "나이가 들면 많이 생기는 병이지" 했다. 본인도 그렇단다. 몰랐다. 새로운 사실이 이었다. 신랑도 그랬구나. 왠지 링거를 맞고 온 내가 미안해졌다.

더 버텨야 했던 걸까? 흔한 건데 병원을 간 걸까? 리라 아빠도 많이 아픈데 아마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아프다고 말도 못 하고 참고 있는 걸까? 내가 육아를 시작하며 회사를 퇴사를 한 게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머리 위엔 또 많은 물음표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픈 게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의 어깨의 무게를 같이 나누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밤이나 낮이나 시간을 분으로 쪼개서 사용하고 부족해서 잠을 줄이다 보니 악순환이다. 잘해보려 노력하는데 아프기까지 하다 보니 더 미안해진다. 일부러 아프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 엄살 피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남편의 무거운 어깨가 너무 안쓰럽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