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조성 강사 라라 Dec 06. 2023

왜 쟤는 되고 나는 안되는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기회를 선물 받았다


"편집부에서 논의한 결과 흥미로운 작품입니다만, 저희가 현재 기획하는 출간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저희 회사에서는 출간이 어려울 듯합니다."


오늘 아침 받은 한 출판사로부터 받은 메일이었다.

'어느 출판사길래 거리가 멀다는 거지?'

궁금해서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내 책과 유사한 책이 차고 넘쳤다.

바로 그 순간!!  내 안에서 억울함과 함께 올라오는 말 한마디.



왜 쟤는 되고 나는 안되는데?



와하. 신기하고 놀라웠다.

이 말은 내가 20대 말~30대 초에 뮤지컬 작품 공연 계약이 안 될 때마다 내 안에서 맴돌던 말이었다.


'내가 정말 열심히 했는데... 내 작품 정말 재밌고 잘 썼는데... 내 곡 분명히 좋은데... 칭찬도 많이 받았는데....'

거절당할 때마다 올라왔던 그 억울한 마음.


'그 작품보다 내 작품이 훨씬 나은데, 왜 그 작품은 그렇게 오래 공연하면서 내 작품은 안되는 건데!' 하는 오래전 감정이 오늘 아침에도 그대로 재생되고 있었다.



작품뿐만이 아니었다.

어릴 적 나는 공연 연주자로 일하고 싶은 간절함도 엄청 컸었다.

그래서 공연을 보다가 실력이 떨어지는 연주자를 발견할 때도 '왜 쟤는 되고 나는 안되는데?' 하는 억울함이 반복됐었다.



그래서 내가 안 됐던 거구나....



살면서 누구나 거절을 겪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과거에 거절당할 때마다 '억울함'이라는 불리한 선택을 했다.

(그 억울함이 프로젝터 타입으로서 인정과 초대를 갈망해서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그래서 그때의 내가 더 짠하다.)


한 번 두 번 거절당할 때마다 억울함과 분노를 느꼈고.

그때마다 '왜 쟤는 되고 나는 안되는데?'라는 생각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스스로 강화했고,

그래서 결국 '쟤는 되고 나는 안 되는' 현실을 계속 내가 창조했던 것.



다행히 지금 나는 내 무의식적 패턴 너머의 진실을 볼 수 있다.

그 출판사가 내 원고를 거절한 것은.

정말로 내 원고가 별로여서일 수도 있고, 내 원고가 괜찮았는데 편집자 취향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거절 메일은 그리 별 일이 아니다.


물론 메일을 확인할 때 가슴이 철렁한 기분이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1분 이상 그 기분을 굳이 곱씹을 일은 아니다. 억울할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나는 출판사 900군데에 메일을 보냈고,

앞으로 한 달간은 꾸준히 거절 메일을 받을 것이다.

그나마 거절 메일을 보내준 것도 엄청 감사한 일이다. 검토도 해줬고, 확답도 줬으니까.



촛불처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내 감정을 관조하기


그래서 앞으로 한 달간 나의 무의식적 패턴을 정화하는 '수행'의 시간으로 삼기로 했다.

거절 메일을 받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올라오는 억울함을 가만히 안아주고.

과거에 아무것도 몰라서, 억울함을 되새김질하며 스스로 더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던 안쓰러운 나를 안아주기.


거절감과 함께 올라오는 감정을 굳이 오래 곱씹을 필요가 없음을 알아차리고.

천천히 호흡과 함께 떠나보내기.


그리하여 대략 한 달간 이런저런 메일을 받을 때마다,

감정 속으로 빨려들어가지도 않고, 감정을 억누르지도 않은 채.

촛불처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나의 감정을 고요히 관조하기.


하. 멋진 시간이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분노, 믿음, 그리고 열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