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창조성 강사 라라
Feb 26. 2020
09 지니의 마법, 동시성
넷째주 - 내면의 안내와 함께하기
A는 많이 지쳐서 쉼이 필요했지만, 모아놓은 생활비가 한 푼도 없었다. 대책 없이 돈도 없는데 쉬면 안된다는 두려움이 컸지만, 몸을 위해서 무조건 두 달은 일하지 않고 쉬기로 결심했다. 보름 후 소속된 팀에서 예전에 작업했던 작품을 시상식에 출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A는 시상식에서 상과 상금을 받게 되었다. 상금은 넉넉히 두 달 생활비를 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B는 필요한 전자제품을 구매하는데 예산이 부족했지만, 예산에 맞추느라 갖고 싶은 제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약속이 있어 들른 곳에서 오픈 기념 특별 세일을 하는 매장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사고 싶었던 제품을 예산에 맞게 구매할 수 있었다.
창조성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위의 사례들처럼 벽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갑자기 문으로 바뀌는 마법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심리학자 칼 융이 ‘동시성’이라 부른 이런 마법은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바로 내 안의 지니와 연결되는 순간 지니가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다.
동시성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허무맹랑하다’,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다’, ‘열심히 노력할 생각은 안 하고 요행을 바라는 것 같다’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동시성은 융이 만들어낸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 풀이 난다’는 속담도 있듯, 아무리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것이라도 정말로 원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일은 삶 속에 언제나 있어왔다.
그럼에도 동시성을 받아들이기엔 여전히 미심쩍을 수 있다. 진짜로 믿었다가 동시성이 일어나지 않을까봐 두려울 수도 있고, 과거에 간절히 원했다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아픈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렇게 동시성에 대한 막연한 앎은 혼란을 가져온다. 동시성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동시성을 이해하고 삶으로 받아들이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동시성은 내가 원하는 것을 존중할 때 일어난다
A, B의 사례처럼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할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욕구를 무시하지 않고 진실하게 수용할 때, 그 순간 내면의 안내자와 연결되고 지니의 마법이 시작된다. 그러니 지니의 마법을 경험하고 싶다면 먼저 할 일은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 ‘안돼!’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이 직장을 그만 다니고 싶다. 하지만 내 조건으로 더 좋은 직장을 구할 수는 없을 거야’
‘여행 가서 맘껏 푹 쉬어보고 싶다. 하지만, 할 일도 많은데 지금 여행 갈 때가 아니지.’
‘아... 저 옷 갖고 싶다. 하지만 이번 달엔 아껴 써야 해...’
나에게 ‘안돼’라고 말하는 것은 지니도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내가 나에게 허락하지 않는 일은 안타깝게도 지니도 도울 수가 없다.
‘어쩌면 더 좋은 직장을 구할 수도 있어.’
‘어쩌면 여행을 갈 방법이 생길지도 몰라.’
‘어쩌면 저 옷을 가질 돈이 생길 수도 있을 거야.’
내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안돼’라고 말하는 대신, ‘그래, 나는 그걸 원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잖아’라고 나에게 허락할 때, 지니의 도움으로 우주의 풍요로운 축제에 참여하게 된다. 그저 ‘하고 싶어’라는 내 안의 작은 열망은 바로 우주의 축제에 참여하는 초대권이다.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이 외부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인지, 내면에서 올라오는 자연스러운 충동인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려면 내가 원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가져오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이번 여름에는 해외로 여행 가고 싶다. 아직까지 해외로 여행도 한번 못가보고, 창피하잖아.’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아무도 나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겠지?’
‘영어를 잘하고 싶다. 회사에서 나만 영어를 못해서 너무 불안하고 내가 한심해 보여.’
외부의 평가가 두려워 생기는 욕구는 긴장, 두려움, 불안, 혼란 등의 편안하지 않은 느낌을 불러온다. 내면의 안내자와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생각’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욕구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욕구들로 시작한 일은 결과가 어떻든 만족감을 가져오지 못한다. 내면의 안내자와 연결이 끊어졌으니, 동시성이 돕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나도 좀 의아하긴 한데, 갑자기 네덜란드어를 배우고 싶어졌어.’
‘이유는 모르지만, 조금 긴 여행을 가고 싶어졌어.’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곤충을 관찰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
내면에서 올라오는 자연스러운 충동은 즐거움, 열정, 설렘, 기쁨, 명료함 등의 긍정적인 느낌을 불러온다. 이런 긍정적인 느낌들이 바로 내 안의 지니와 연결되는 열쇠이다. 이런 욕구들은 나의 고유성이 발현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나도 모르게 계속 관심이 가고, 해보면 재밌을 것 같은 것들,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일인데도 하고 싶은 일들은 나의 지니가 나를 안내하는 신호들이다.
동시성은 무한한 가능성에 마음을 열 때 일어난다
제주에 사는 C는 서울에 왔다가 제주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에 태풍으로 항공운항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었다. C도 예약했던 티켓을 취소하려는데, 왠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C는 지니에게 상황을 맡겨보기로 하고 티켓을 취소하지 않았다. 태풍이 지나가면서 운항이 재개된 첫 비행기는 바로 C가 예약했던 비행기였고, C는 예정대로 편안하게 제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니는 드라마틱하고 멋진 마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성적이고 싶은 당신은 지니의 마법을 기대하기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계획을 스스로 준비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신의 삶에서 이미 충분히 비현실적인 동시성을 여러 번 경험했지만, ‘그건 그저 우연일 뿐이야, 운이 좋았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만다.
당신이 살면서 겪은 모든 우연은 우연이 아니다. 우연은 신이 일하는 방식이다. 우연은 내 안의 지니가 나를 안내하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우연을 바라는 건 너무 허황된 생각일지 몰라’라고 생각한다면, 언제까지고 내가 원하는 것을 현실적인 좁은 가능성 안에서 이루려 애써야 한다.
급류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가면 가장 빠르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우리는 급류에서 벌떡 일어나 물살을 온몸으로 맞서서 헤치면서 힘들게 걸어간다. ‘급류 끝에 절벽이 있을지도 몰라’, ‘이 길이 아닐지도 모르잖아’ 하는 두려움에 힘을 빼고 편안히 누워있을 수만은 없다. 아무 애씀도 없이 그저 급류에 몸을 맡기고 떠있기만 하면 내가 가야 할 곳에 도착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못한다.
동시성의 도움을 받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동시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급류에서 일어나 온몸으로 물살에 맞선다. 힘들게 애써온 시간이 길수록, 단지 힘을 빼고 노력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성경 구절이 있다. 겨자씨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다. 그런 작은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으나, 우리는 겨자씨만한 믿음을 갖기도 힘들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있든 없든 내 안의 지니는 언제나 나를 안내해왔고, 내가 원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겨자씨만큼도 안 되는 희미한 믿음만으로도 동시성은 일어난다.
세상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제 ‘그건 불가능해!’라는 나의 좁은 생각에 지니를 가두지 말고,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라고 가능성을 열고 지니가 마법을 부릴 기회를 허락해보자. ‘어떻게’ 할지는 지니에게 맡기자.
지니는 언제나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멋진 방법으로 나를 안내한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을 잠시 내려놓자. 대신 내가 ‘무엇을’ 정말로 원하는지 내면의 욕구를 진실하게 알아차리고, 어쩌면 지니의 도움으로 그것을 가질 수도 있다고 나 자신에게 허락해주자.
-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