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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조성 강사 라라 Nov 30. 2020

네 번째 삶

지랄 맞게 변해서 따라가기 버거운 내 인생에 대하여


30대 후반.

 모든 게 혼란스러워서 미치기 일보 직전일 때였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보고도 소용이 없자, 절박한 마음으로 도움 얻을 곳을 찾아갔다. 상담 전 방문 목적을 적는 곳에 이렇게 썼었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바뀌어서 너무 어지럽고, 혼란스러워요.
남들이 한번 사는 인생을 압축해서 한 번에 여러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시 나는 '세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단 몇 년 사이에 내 가치관이 완전히 뒤집히는 경험을 두 번이나 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첫 번째 인생은 33살에 우울증으로 자살시도를 할 때까지였다. 내가 삶을 놓기로 결심했을 때 정말로 삶은 끝이 났고, 그 이후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랬다. 우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변했다.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고통받으며 우울했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외모, 표정, 말투와 행동...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새 인생에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해가는 시간은 물론 쉽지 않았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이 충돌할 때마다 인내심을 갖고 새로운 방식을 선택하는 훈련을 반복해야 했다. 될 때까지 반복되는 훈련이 너무 버거워 모든 게 원망스럽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예전의 우울한 삶을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절대로.   


 그래도 꾸역꾸역 새 인생에 적응해갈수록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신나는 삶이 펼쳐졌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자신감이 넘쳤고, 소소한 일상에서도 감탄사를 남발하며 살아있음을 기뻐했다. 모든 게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풀려갔다. 이제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매뉴얼을 갖췄고, 이 매뉴얼대로만 살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른일곱.  멋지게 잘 살고 있다고 자부했던 두 번째 삶에 고작 3년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일상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무언가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졌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되어가고 있지만, 무엇에도 즐거움도 열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답을 찾기 위해 무작정 인도로 떠났다. 하지만 인도에서 답을 찾아 돌아오겠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오히려 인도에서 명상하는 동안 삶에서 기준으로 삼았던 모든 것들이 또다시 해체되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머물던 어느 날 새벽, 신성한 숲에서 열리는 신성한 의식에 참가했다. 개인마다 주어진 작은 제단 앞에 앉아서 자신의 자아를 상징하는 코코넛 열매를 태우고, 신에게 나를 내어 맡기는 절을 하는 의식이었다. 코코넛 열매를 불 속에 던져놓고 열매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내 존재가 불에 타서 사라지는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복잡한 감정들이 북받치면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돌아보면 그때 그 순간이 두 번째 삶이 끝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자아를 내려놓고, 의식의 확장이 시작된 날. 그 날 이후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라는 자아가 만든 틀을 하나씩 깨부수고, 새로운 확장된 인식으로 리셋하는, '대환장의 혼란'을 3년 내내 겪게 되었다. 서른일곱에 또다시 말을 할 줄 모르고 걸을 줄 모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인도에서 돌아온 이후의 일상은 쑥대밭이 되었다. 차라리 수녀가 되거나 절에서 수행하면서 일상과 분리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머릿속엔 온갖 신비로운 영적 체험과 새로 유입된 영성 지식이 혼란스럽게 엉켜있는데,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런 얘기를 꺼내기는 어려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회적 도덕적 기준이 붕괴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적인 대화에 끼지 못하고 혼자 말없이 혼란 속을 허우적대곤 했다.

  저절로 말수가 줄었고, 사람들과도 멀어지며 점점 고립되어 갔다. 이러다가 미치는 건 아닐지, 앞으로 정상적 사회생활이 가능할지 두려웠다. 차라리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가면 이 혼란 속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든 이 혼란의 끝에 뭐가 있는지 가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3년의 대혼란을 겪은 끝에 드디어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우주적? 질서가 얼추 자리 잡았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자아가 혼란을 겪으며 축소된 자리는 '내어맡김'으로 채워지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담대함과 용기가 생겼다. 자연스럽게 그동안 얻은 통찰과 지혜를 워크숍과 팟캐스트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세 번째 삶에서 나는 '치유자'가 되었다.

 

 이제 어떤 질문, 어떤 상황에도 막히지 않는 지혜로운 답이 내 안에 있었고, 언제든 내면의 지혜와 접속할 수 있으니,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친 듯 자유로웠다. 첫 번째, 두 번째 삶은 모두 세 번째 삶을 위한 과정이었으며, 이제는 정말로 내가 왜 존재하고 무엇을 하면 되는지 답을 다 찾았다고 생각했다. 찾은 답대로 살고 있으니 모든 것이 완벽하고, 계속 이대로만 살면 되겠구나 싶었다.




   다 알 것 같고, 다 깨친 것 같던 의기양양한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올해 초부터 또다시 완전히 방향을 잃고 혼란 속을 헤매고 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답이 되지 않고, 하려고 했던 일들도 의미를 찾기 어려워졌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지금 상황에서 확실히 알고 있는 한 가지는 다시 새로운 답을 내 안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삶을 살게 할 것이라는 것.

 아마도 앞으로의 삶은 나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말했던 '이번 삶에서 확장될 수 있는 최대치로 확장되고 싶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확장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그냥 살던 대로 살고 싶어서, 잔뜩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다.


   나는 자유롭고 용감한 사람도, 변화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생 같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몹시 동경한다. 살만하다 싶으면 찾아오는 혼란스러운 변화의 기운이 힘들어서 다 때려치우고 숨어버리고 싶을 때도 많고, 낯선 경험들 속으로 뛰어들 자신이 없어 잔뜩 겁에 질려버리곤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삶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 흐름을 거부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울며불며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삶에서 또 어떤 일을 하고, 누구와 만나게 될까. 어떤 낯선 과정을 헤매며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할까. 그 경험 끝에 어디에 있을까.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저 오늘 하루 주어진 시간만큼 헤맴과 모름 속을 휘젓고 다니며 앞으로 가야 할 길의 단서를 찾아본다.

 그저 오늘 하루만큼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성실하게 일상을 탐색하고 집중한다.

 이 변화를 이끌고 있는 내면의 깊은 욕망을 만나기 위해, 천천히 호흡하며, 생각의 곁가지들을 치우고, 가만히 내면에 귀 기울이길, 그저 지금 이 순간도 반복할 뿐이다.   

 



덧붙임 : 30대 후반 찾아갔던 선생님이 명상 중에 해주신 말씀은, 내가 이번 생을 마지막으로 살기 위해 여러 생에 거쳐 배워야 할 것들을 한생에 빠르게 배우기를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같은 인생을 누군가는 조금 천천히 살고 누군가는 많은 변화를 겪으며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만으로도, 더이상 나의 변화무쌍한 삶에 저항하지 않게 되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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