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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조성 강사 라라 Aug 08. 2022

박쥐같은 내 인생


내 인생의 주요 키워드는 '변화'다.

관계도 일도 모든게 변화무쌍한데, 변화 속에서도  일관된 패턴이 있다.

날아다니지만 조류가 아니고, 포유류지만 새같은 박쥐같이.

어느 곳에 가도 소속되지 않는 '이방인'이 되는 것.




처음 내가 '박쥐'같음을 인지했을 때는 재즈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였다.

역사를 전공한 대학에서는 '너무 감정적이다', '토론할 때 논리 없이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말을 줄곧 들었는데,

예술인의 집합소인 재즈아카데미에서는 유일하게 한겨레 신문을 들고 다니는...(이런 걸로 사람들이 나를 신기하게 보는 상황이 너무 웃기긴 하지만) '매우 이성적,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줄곧 들었다.


그때를 시작으로 나의 박쥐 성향은 삶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났다.


재즈피아노를 전공할 때는 '연주가 클래시컬하다'는 평을 들었고, 클래식 전공자들은 한결같이 내 연주가 '완전 jazzy하다'고 했다.


가요를 작곡할 때는 내 곡이 '너무 뮤지컬같고 가요지 않다'고 했고, 뮤지컬을 작곡할 때는 '너무 가요스럽다'고 했다.


전통음악을 작곡할 때는, 전통음악 전공자들이 '이건 전혀 전통음악이 아니다'고 했고, 내 곡을 들은 일반인들은 '굉장히 국악적이다'고 했다.


....이것 말고도 박쥐같은 상황에 놓인 예는 일상에서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어떤 에서도 나는 완전히 소속되지 못했다.

나름 어울려 보려고 내 생각을 숨기고 어떻게든 비슷한 척 해봐도, 그들이 아닌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섞일... 수가... 없다...."



30대 후반, 멘탈이 건강해진 이후로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과 소속될 수 없는 답답함을 그대로 끌어안고 그냥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끔 나같은 박쥐들을 만나 반갑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만난 시인 경주오빠는 늘 '경계선'에 관심이 간다고 했다.

정확히 기억 안나지만,

날짜 변경선 위를 지나가는 비행기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겪게 되는 남녀 이야기에 대한 작품소재를 들려주기도 했다.

(오빠에게서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나는 왜 오빠처럼 우아하게 '경계선'이라 표현하지 못하고 '박쥐같다'는 표현을 써왔을까...!' 심히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박쥐들은 또 굳이 박쥐끼리 모여 어울리며 소속감을 다지지는 않는다.

잠시의 반가움과 서로의 외로움을 공명하고는.

또 각자의 '경계선에 서 있는 삶'으로 흩어지곤 했다.





요 며칠.

내 삶에는 또다른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무언가가 안정되기도 전에 다음 변화가 이미 시작되는 이런 뒤죽박죽한 삶이.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늘 그렇듯 변화의 조짐은 '대단한 혼란-현실붕괴'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거지?'

'뭘 하려 했던 거지?'

'왜 하려던 일이 다 의미없게 느껴지지?'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등등등.


(...그런데 또 가만히 보면. 현실적 지각변동은 이제 시작이지만, 혼란의 씨앗은 항상 저 멀리 몇년 전부터 흩뿌려져 있었다.

 이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새삼 감탄하곤 한다.

'그 때 그 까리한 조짐이 이거였다니...' 하면서...)


암튼 요 며칠을 대혼란으로 잠을 설치다가, 그 혼란이 어이없게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됐다.

언젠가 캄스페이스 현동 대표가 말한 것처럼.

나는 결국 도를 모르는 현실주의 한복판에서는 '도'를 외치고.

현실을 초월한 도판에서는 '현실주의'를 외치려는 거구나.

그 일을 위해. 하던 일을 엎고 다시 새로운 판을 짜하는 거구나.


...내가 박처럼 경계선에 있었던 이유는 늘 '균형'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의 성향 때문에 고등학교 윤리시간부터 아리스토텔레스와 성리학의 '중용', 불교의 '중도', 헤겔의 '변증법', 철학의 기초이론에서 '부정의 부정의 법칙' 같은 것들에 뜨겁게 이끌렸나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나의 다능인적인 재능이 제대로 발현되는 포인트였다는 걸, 어제 책을 읽다가 새삼 깨달았다.


다능인은 브레인스토밍을 즐기고 원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상황을 더 좋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즉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다능인들은 한 분야에만 정통한 전문가들이 놓칠 수 있는 제도적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선택이 다른 부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더 설득력 있고 정보에 입각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다능인은 언제나 혁신가였으며, 혁신가들 중에는 다능인이 많다.

에밀리 와프릭, <모든 것이 되는 법>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치고 말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박쥐'같은 외로운 느낌은.

어디에서도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변화로 내몰리는 삶은.

내가 세상에 기꺼이 용기내어 드러내야 하는.

나의 중요한 재능 중 하나이다.


민감함으로 개고생하고 살았지만, 결국 민감함을 강점으로 발현하게 되었고.

4번 유형의 감정기복으로 심히 힘들었지만, 결국 4번의 미덕을 하나씩 얻게 되었고.

프로젝터로서 한없이 무력하고 힘들었지만, 결국 프로젝터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삶으로 리셋한 것처럼.

이제 좀 더 '의식적'으로 나의 박쥐같은 삶을 주요 재능으로 펼칠 때가 되었나보다.



대혼란과 격동의 변화의 앞에 선 지금 내 심정은.

늘 그렇듯이.










...... 아.... 귀찮다..... 이노무 인생...










......편할 날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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